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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백서 제작 미팅 중(디자인 고민?)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2025년 12월 16일
  • 5분 분량

백서 제작, 구성표가 먼저다

공공기관이든 기업이든, 10주년이나 20주년 같은 기념 백서를 만들어야 할 때가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담당자가 백서 제작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자료 모아서 정리하면 되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막상 시작하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막막해진다.

수년간 여러 기관의 백서 제작을 도우며 깨달은 게 있다. 백서 제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글 쓰는 실력도, 디자인 감각도 아니다. 프로세스 설계다. 특히 자료 요청 방식, 구성표 작성 순서, 일정 관리 이 세 가지가 프로젝트의 성패를 가른다.

자료를 먼저 달라고 하지 마라

백서 제작을 의뢰받으면 본능적으로 "일단 자료부터 주세요"라고 말하게 된다. 합리적인 순서처럼 보인다. 자료를 봐야 뭘 쓸지 알 테니까.

하지만 현장에서 이 방식은 십중팔구 실패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담당자들도 "뭘 줘야 하는지" 모른다. 막연하게 부서별로 자료 요청을 하면 돌아오는 건 장표 몇 장, 수치 몇 개가 전부다. 부서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구성원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어떤 사업이 어떤 맥락에서 시작됐는지—이런 스토리는 빠져 있다. 그냥 "있는 거 보내드렸어요"가 된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다. 자료 요청하고 수집하는 데만 보름이 훌쩍 간다. 그 자료를 보고 "이것 말고 저것도 필요해요"라고 다시 요청하면 또 보름. 이러다 일정이 다 날아간다.

그래서 순서를 바꿔야 한다. 구성표가 먼저다.

구성표를 먼저 짜는 이유

구성표를 먼저 짜면 자료 요청이 구체적으로 바뀐다.

"자료 보내주세요"와 "3장 '지역과 함께한 10년' 섹션에 들어갈 2015년~2018년 지역 축제 협력 사례 사진과 참여 인원 데이터가 필요합니다"는 완전히 다른 요청이다. 후자는 담당자가 뭘 찾아야 하는지 명확히 안다. 그리고 "아, 이게 필요하구나"라는 인식이 생기면 자료도 빨리 나온다.

구성표는 또한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경영 체계 구축 부분을 넣을까요 말까요?"라는 논의가 공중에 뜨지 않는다. 구성표를 펼쳐놓고 "여기 이 분량으로 들어가는데, 채울 콘텐츠가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답이 나온다. 시각화할 게 없으면 과감히 빼거나 다른 섹션에 흡수시키면 된다.

내가 권하는 순서는 이렇다.

1단계: 큰 틀 합의 — 전체 방향성, 키워드, 톤앤매너 결정 (1~2회 미팅)2단계: 구성표 초안 제시 — 목차, 각 섹션별 예상 분량, 필요 자료 목록 포함3단계: 구성표 리뷰 — 이 단계에서 "여기에 이 자료가 빠졌네", "이건 우리가 안 줬었네"가 자연스럽게 나온다4단계: 자료 수집 — 구성표 기반으로 구체적 요청5단계: 원고 작성 및 검수6단계: 디자인

구성표에 뭘 담아야 하나

한글 파일 하나에 다 담는다. 제목, 카피, 서브 카피, 본문 방향, 들어갈 사진까지. 나중에 디자인될 때 이 자리에 뭐가 배치될지 읽히도록 써놓는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섹션 3] 감동 — 무대 위의 10년 - 메인 카피: "첫 무대를 기억하십니까" - 서브 카피: 2015년 첫 기획공연부터 지금까지, 함께 만든 순간들 - 본문 방향: 기획공연 연혁 중심, 대표 공연 3~4개 하이라이트 - 필요 자료: 기획공연 연도별 목록, 대표 공연 사진(고해상도), 관객 수 데이터 - 예상 분량: 4~6페이지

이렇게 구성표가 나오면 담당자는 "아, 기획공연 사진은 홍보팀에 따로 요청해야겠네"라고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관객 수 데이터는 우리가 정리해놓은 게 있어요"라는 피드백도 바로 나온다.

사진, 홍보팀 설득이 관건이다

백서에서 사진은 절반 이상의 역할을 한다. 특히 요즘은 글줄 중심의 전통적 백서보다 비주얼 중심의 매거진형 백서가 대세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좋은 사진은 대부분 홍보팀이 쥐고 있고, 홍보팀은 사진을 잘 안 내준다.

이건 거의 모든 기관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홍보팀 입장에서 사진은 본인들의 자산이자 경쟁력이다. 그냥 "사진 주세요"로는 안 통한다.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 구성표를 무기로 쓴다. "전체적으로 사진이 필요해요"가 아니라 "3장 이성계 행차 축제 섹션에 2019년과 2023년 행사 비교 사진이 필요합니다. 이 구성에서 이 위치에 들어갑니다"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한다. 왜 필요한지 맥락이 명확하면 내주기 쉬워진다.

둘째, 단계를 나눈다. 1차로 각 부서 담당자한테 있는 사진으로 작업하고, 디자인 시안이 나오면 "여기는 더 좋은 사진이 필요합니다"라고 2차 요청한다. 시안을 보면 홍보팀도 납득한다.​

일정, 보름 단위로 생각하라

백서 제작에서 일정은 항상 부족하다. 그리고 예외 없이 뒤로 밀린다. 이유는 각 단계가 "보름씩 잡아먹기" 때문이다.

  • 구성표 검토 및 피드백: 보름

  • 원고 초안 작성: 보름~한 달

  • 원고 검수 및 수정: 보름

  • 디자인 작업: 보름~한 달

  • 디자인 검수 및 수정: 보름

  • 인쇄 및 제작: 1~2주

3월 말 납품이라면 12월 중순에 시작해도 빠듯하다. 여기에 연말연시 휴가, 설 연휴가 끼면 실제 작업 가능 일수는 더 줄어든다.

그래서 두 가지를 권한다.

일정표를 공유하라. "이때까지 이게 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를 문서로 만들어 관계자 전원이 보게 한다. 구두로 말하면 잊는다. 표로 만들어 공유하면 "아, 다음 주까지 이거 줘야 하는구나"가 각인된다.

협력 마인드를 심어라. 백서 제작은 외주업체가 알아서 하는 게 아니다. 담당자와 외주업체가 같이 만드는 거다. 자료 안 나오면 못 간다. 피드백 늦으면 밀린다. 이걸 프로젝트 초반에 분명히 해야 한다. "도와주십사"가 아니라 "같이 해야 합니다"라고.

콘텐츠가 부족할 때

자료를 아무리 모아도 "이걸로 뭘 채우지?"라는 섹션이 생긴다. 경영 관리, 조직 체계 같은 부분이 대표적이다. 시각화할 게 마땅치 않고 스토리도 없다.

이럴 때 선택지는 세 가지다.

1. 과감히 줄인다. 다른 섹션과 같은 비중을 줄 필요 없다. 2페이지짜리 섹션이 있고 6페이지짜리 섹션이 있어도 된다. 내용 없는 걸 억지로 채우면 퀄리티만 떨어진다.

2. 다른 섹션에 흡수한다. 별도 챕터로 빼지 말고 관련 있는 다른 챕터 말미에 짧게 언급하는 방식이다. "이 사업이 가능했던 건 이런 경영 기반 덕분"이라는 맥락으로 녹여내면 자연스럽다.

3. 인포그래픽으로 대체한다. 글로 풀기 어려운 내용은 데이터 시각화로 처리한다. 6년 연속 A등급 같은 수상 실적, 예산 변화 추이, 조직도 변천사 등은 인포그래픽이 글보다 효과적이다.​

인터뷰와 기고, 어디에 누구를

백서에 인터뷰나 기고를 넣으면 깊이가 생긴다. 하지만 "일단 많이 넣자"는 금물이다. 누구를 어디에 배치하느냐가 관건이다.

내가 권하는 구분은 이렇다.

특별 기고 — 해당 분야에서 인지도 있는 인물. 펼쳤을 때 "오, 이 사람이?"라는 반응이 나올 사람. 길게 쓸 필요 없다. 한 페이지 이내로 임팩트 있게.

전문가 인터뷰 — 협력 기관 관계자, 자문위원 등. 기관의 활동을 외부 시선으로 평가해줄 수 있는 사람들.

이용자 인터뷰 — 실제 수혜자, 프로그램 참여자. 동아리 단장, 강좌 수강생, 시설 이용자 등.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담당한다. 짧게 여러 명 싣는 방식도 좋다.

직원 인터뷰는 빼는 게 낫다. 솔직히 말해, 독자 입장에서 해당 기관 직원의 인터뷰는 관심 밖이다.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했습니다"는 자화자찬으로 읽힌다. 그 지면을 외부 시선으로 채우는 게 신뢰도 면에서 낫다.

축사는 필수지만 과하면 지루해진다. 기관장 발간사 외에 2~3명이 적당하다. 축사가 5명, 10명 되면 아무도 안 읽는 페이지가 된다.

디자인, 사전에 톤을 맞춰라

"관공서 냄새 안 나게 해주세요."

백서 의뢰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뭘 원하는지 물으면 대부분 대답을 못 한다.

이럴 때 나는 레퍼런스를 요청한다. "마음에 드는 백서나 책자 있으면 보여주세요." 그리고 "이건 왜 마음에 드세요?", "이건 왜 싫으세요?"를 물으며 취향을 좁혀간다.

대개 "관공서 냄새"란 이런 것들이다: 전통적인 문양, 구 상징물을 크게 쓴 표지, 빽빽한 글줄, 과도한 표와 차트, 식상한 컬러 조합(파랑+빨강 계열).

그 반대, 즉 "세련된 느낌"은 이런 것들이다: 여백 활용, 큰 숫자의 타이포그래피, 화보 중심 레이아웃, 절제된 컬러, 모던한 서체.

이걸 디자인 전에 합의해두지 않으면 시안 나오고 나서 "이거 아닌데요"가 된다. 그러면 디자인 다시 해야 하고 일정 다 꼬인다. 초반에 레퍼런스 기반으로 톤 합의를 해두는 게 나중에 시간을 아낀다.

결국 소통의 문제다

백서 제작에서 실패하는 프로젝트를 보면 공통점이 있다. 외주업체는 "자료가 안 나와서 못했다"고 하고, 의뢰 측은 "뭘 줘야 하는지 몰랐다"고 한다. 서로 기다리다 시간만 간 거다.

이걸 막는 건 결국 촘촘한 소통이다.

구성표를 먼저 보여주고, "여기에 이런 자료가 필요합니다"라고 구체적으로 말하고, 일정표를 공유해서 언제까지 뭐가 되어야 하는지 같이 인지하고, 중간중간 시안을 보여주며 방향을 맞춰가는 것.

백서는 혼자 만드는 게 아니다. 글 쓰는 사람, 자료 가진 사람, 결정권 가진 사람이 같이 만든다. 이 협업 구조를 초반에 잘 세팅하는 게 좋은 백서를 만드는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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