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생각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이야기를 누군가 대신
써준다는 것이 부끄러운 사람도 있는 반면,
적잖은 시간을 쏟아야 할 원고 집필을
도와주는 전문가가 있어서
감사하다는 분도 있습니다.

자서전대필은 인터뷰에서
시작해서 인터뷰로 끝이 나는 과정입니다.
저자는 자기 생각을 '원고화'하지 못하는 것일 뿐,
책 한 권을 쓰려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그 안에 이미 '콘텐츠'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터뷰는, 보물을 캐는 과정이고
자서전대필작가의 질문은 이 질문을 캐는 삽과 같습니다.
질문하지 못하거나 잘못 질문하는
작가의 기획과 원고는 고로
처참한 결과를 맞습니다.
어떤 작가가 글을 잘 쓸지 못 쓸지는 그래서,
꾼들에게는 그 자가 "어떤 질문을 던지는가?"로
귀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는 보험 컨설턴트를 만났습니다.
이 바닥에서는 '왕중왕'이라고 불리는,
연봉이 억 대가 넘는 대표님은
귀가 손바닥만하시더군요.
잘 듣는 사람이라는 신호입니다.
아무렇게나 인터뷰 준비를 했다고 민망해하면서도,
다이어리에 적힌 빼곡한 메모를 보면서 제가 느꼈던 건,
이 사람이 철저하게 몸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거였지요.
세상에는 머리만 쓰는 사람이 있고
머리와 몸까지 쓰는 사람이 있는데,
전자의 경우는 논리로 설득하지만
후자는 마음으로 설득하는 게 가능해지죠.
순간, 그가 왜 '왕중왕'이라
불리는 영업자인지 깨닫게 되더군요.
"살면서 이런 질문은 처음 받아봐요. 질문자의 내공이 느껴지네요..."
좋은 질문을 던졌을 뿐인데
상대는 벌써 마치 노벨상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입니다. 이미 자기 분야의 통달한 그는
서툰 인터뷰이지만
인터뷰를 통해 자기 원고가 어떻게 나올지
짐작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또 인터뷰의 중요함을 알고,
그 무게감을 나누려는 저자에게는
대필작가인 저 역시 어깨가 무거워지죠.
원고는 더 어려워집니다.
최근에는 모 작가가 쓴 글을
고쳐쓰는 작업도 병행 중인데,
소위 '글발'이 화려하다는
작가의 글을 고치면서 드는 생각은,
그가 인터뷰에 에너지를 쏟지 못했다는 거였습니다.
희안하죠. 글은 참 잘 썼는데
어딘가 구색이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은, 그 작가가 영혼을 털어서 글을 쓰지 못했다는 엄격한
비판이 아니라,
그가 방향을 잃고 기획의 중심을 잡지 못했다는
다분히 실무적인 평가였습니다.
M 프랜차이즈로 크게 성공한 회장님의 그 인터뷰는
이미 오래 전 끝나버렸고,
이미 과거로 흘러가버린 그 순간의
흔적만 남은 원고를 다듬어서 엎어진
문장이 벌떡 일어나 걸어가게
하려면, 제 영혼을 가상의 인터뷰이에
대신 투사하는 식이 아니라
철저히 '요령 중심'으로 실무 작업을 하게 됩니다.
요컨대, 기획의 축을 잡고 문장을
하나씩 고쳐쓰는 작업을 해나가는 것이죠.
인터뷰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대필작가의 대필 작업을 쉽게 생각한다면
인터뷰는 불필요하고,
소설처럼 미사여구가 화려한 원고들로 장식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런 글들이야
이미 대필작가보다 챗GTP가 훨씬 더
잘 쓰는 시대에 하루종일 노트북 앞에
앉아서 중노동하며 안 그래도
괴로운 작가의 직업을 더 불행하게
만들 필요는 없겠죠.
그렇게 세상에서 유일한 대필작가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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