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아카데미상과 골든글로브 각본상을 수상한 영화 「그녀(Her」의 남자주인공은 남을 위해서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대필작가'이다. 그가 쓴 편지들은 너무나 감동적이어서 듣기만 해도 눈물이 날 정도다. 이 영화는 누군가를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만들어내는 현실 세계의 모습을 독특한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 영화에서 그려지는 것처럼 글쓰기는 더이상 재능이 아닌 상품성을 띤 '기술'로 대우 받는다. '대필작가'라고 불리는 책대필 전문가이자 기술자들, 그리고 그 기술자들을 필요로 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영화 「그녀(Her」의 개봉과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미국 전 국무장관이자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회고록 「힘든 선택들(Hard Choices)」은 '선주문량 100만부 돌파'라는 이슈와 함께 대필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서 충격과 함께 큰 주목을 받았다. 워싱턴포스트 신문 기사에 의하면 이 책은 당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던 힐러리 클린턴의 두 번째 회고록으로써 '대필작가' 또는 '유령작가(Ghostwriter)'로 3명이 한 팀이 되어 힐러리 클린턴을 대신해 책대필을 진행했다.
책대필 작업을 한 3명의 정체는 그녀가 국무장관 재임 기간 동안 보좌관이었던 댄 슈왈린(Dan Schwarlin) 전 상원의원과 작가 이단 겔버(Ethan Gelber), 힐러리 클린턴의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던 테드 위드머(Ted Widmer)였다. 이뿐만 아니라 힐러리 클린턴의 또 다른 저서인 「살아있는 역사」와 「마을이 나서야 한다」도 역시 유령작가들의 작품으로 밝혀졌다.

수천만원 상당의 유명인 자서전
여태까지는 굉장히 낯설고 생소했던 단어인 대필작가가 최근 들어 영화나 드라마, 그리고 유명인들의 책을 통해 입에 오르내리며 일반인들에게 꽤 알려지고 있다.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 대중에 알려진 유명인들이 대필을 의뢰하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에서는 글쓰기에 자신 없거나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책을 대신 써주거나 작성된 글을 수정해주는 직업으로 자리잡아 있다.
글쓰기 실력이 아마추어 수준인 원저자의 초고를 편집해서 곧바로 출판할 수 있도록 해주거나, 원저자와 인터뷰 등을 통해 원저자의 생각 또는 쓰고자하는 책의 내용을 듣고 이를 소스로 삼아 원저자의 니즈를 파악하여 집을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인터뷰가 가장 많이 실행하는 대필의 사전 작업인데 자료수집을 위해 원저자 뿐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주변인물이나 과거의 사실을 조사하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해외의 대필작가들은 이보다 활동 범위가 넓다.예를 들면 미국에서는 출판사가 실력 있는 대필작가들을 직접 고용하여 소설이나 기타 문학작품까지도 쓰게 하고, 완성된 작품은 유명한 베스트셀러 작가의 이름으로 출판하는 일이 매우 일반적이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들어 대필작가들이 갑자기 증가하기 시작했다. 정치인의 자서전, 기업 CEO의 자기계발서, 기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장용으로 출판하는 자서전을 비롯하여 인기 연예인들의 이름을 내걸고 나오는 다양한 실용서적의 수요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출판업계의 목소리에 의하면 "유명인들은 시간이 곧 돈이다. 그런 상황에서 책을 내겠다고 몇 달 동안이나 가만히 앉아 시간을 투자할 여유가 없다. 그러므로 대필작가를 찾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라고 한다. 물론 책을 출간하는 모든 유명인들이 책대필을 한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은 의뢰인과 대필작가가 철저한 비밀유지를 약속하기 때문에 알아내기는 쉽지 않다. 대필작업이 범죄는 아니지만 유명 의뢰인은 익명을 보장 받기를 원하고, 대필작가 역시 자유로이 드러낼 수 없는 신분이기때문에 계속하여 비밀스럽고 감추어진 영역으로 남아 있다.
정치계에서는 정치인들의 자서전 출간 기념식이 상례로 정착되어 있을 정도로 자기 이름으로 된 책 한두권 쯤은 다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치인마다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자서전 제작과 출판 기념회까지에 대략 4~5,000만 원을 투자되어서 최소 1억~2억 원대의 수익을 얻는다고 한다. 물론 이 수익은 정상적인 인세 수익은 아니다. 정치인들의 네임밸류와 막강한 영향력으로 기부금 형식의 수익을 거두는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정치인의 책을 대신 써주는 A급 대필작가는 약 3,000만 원대의 금액을 받고, 보통은 1,000만 원 내외로 받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경우는 출판기념회라는 일회성 행사에 전량 판매되고 500~1,000부 정도의 많지 않은 제작 부수인데다가, 독자들이 반드시 읽어주기를 바라는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대필작가들도 내용에 최선을 쏟지 않고 대충 쓰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일반인들도 찾기 시작한 대필시장
기존에는 정치인, CEO, 연예인들 정도로 한정적이었던 대필시장의 수요가 최근들어 급증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만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일반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재능사이트'에는 대필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들이 자신을 홍보하는 게시물로 가득하다. 기타 취업전문사이트와 직장인들이 자주 가는 사이트에는 업무 관련 서류, 각종 보고서, 제안서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대필작가들의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은 '손글씨 대필작가'들도 등장하여 샘플까지 제공하며 활발한 수익 활동을 하고 있다.
대필작가들은 문예창작과, 언어과, 저널리즘 계열 및 신문방송학을 전공자가 대부분이다. 또 그들 중 일부는 중고등학교 논술교사, 객원기자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기타 신춘문예공모전 등에 출품 전력이 있거나, 드물지만 간혹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출간했다가 실패하고 의지가 꺽여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서 대필작가로 전향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들은 자신의 이름만 감출 뿐 글쓰기의 내공이 대단한 실력자들이 수두룩하다. 실력에 따라서 댓가가 주어지고 그들만의 세계에서는 유명세도 얻다보니 예전보다 대필작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으며, 그들의 자부심 또한 높아져가는 추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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