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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대필작가의 소회

리퍼블릭 편집부

사람의 생각은 참 오묘하다. 어디에 뜻을 두고 있느냐에 따라 같은 사물을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은 배울 수 있지만 생각을 배울 수 없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세상에는 같은 일을 하면서도 수입이 몇 배씩 차이가 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을 ‘대필작가’라고 표현한다. 이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으려 애를 쓰는 건 부질없는 일이다. 작가들은 대부분 노동자로서 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된지 호소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무슨무슨 단체를 구성해서 이익을 쟁취하려고 한다.

 

그러나, 작가를 원고지 매수에 따라서 돈을 받는 사람으로 규정하는 한, 그것은 시급을 받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하루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24시간인데, 시급을 죽을 힘을 다해 올려봐야 매일 24시간씩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요컨대, 작가라는 직업을 시간을 돈과 바꾸는 일로 규정하는 한, 그 일로 돈벌기는 요원한 것이다.




 

직업이 대필작가라고?

작가인 나 역시 글을 쓰거나 편집하는 일로 업을 삼는 한, 사정이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누군가의 글을 대신 써주거나 누군가의 책을 대신 만들어주고 돈을 받는 이 일을 나는 단 한 순간도 원고지 매수로만 대가를 계산하거나 시급으로 책정해본 적은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익숙한 관례라서, 보수를 안정적으로 받아내기 위해 관습의 틀 안에 저 자신을 끼워 맞춘 사람을 비난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나는 처음에는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 나중에는 이 일을 최대한 오래하기 위해서 나 자신의 가치를 원고지 매당 단가로 끊어 팔지 않기로 했다.

물론 글이나 책 편집을 의뢰한 이에게 견적서를 내밀기 위해서는 합리적 근거가 필요하다. 당신에게 이만큼 일을 해줄 텐데, 그 대가의 책정 기준은 이렇다고 들이밀기 위해 납득이 가능한 기준은 어쩔 수 없이 원고지 매수다. 나도 계약서를 쓸 땐 원고지 500장에 얼마, 하는 식으로 계약을 한다. 그러나 원고지 매수에 단가를 곱해서 청구하는 것과 나는 당신을 위해 이런 과업을 해주기로 한다고 청구하는 건 뉘앙스가 다르다.

 

예를 들어, 나는 고객들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만들어주고, 이를 서점에 유통하여 검색 결과로 이름 석자가 무난하게 등장하도록 만들어 주는 ‘출판 컨설팅’을 해주겠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에 이건 단순히 “글자 수를 얼마나 써줄 테니 원고지 매당 얼마를 달라”는 식의 요구 조건보다 세련된 방식일뿐더러 부가가치도 더 높다. 다시 말해, 글 집필과 편집에 관한 일을 ‘출판 컨설팅’이라는 보다 추상적인 가치 체계로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스스로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다.

 

내가 하는 일을 부러워하거나 신기해하는 이들은, 단지 내가 남보다 글을 조금이라도 더 잘 쓰기 때문에 이 일을 수년째 하고 있는 것이라고 오해한다. 그 오해가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사실 글만 잘 쓰기로 따진다면 나는 이 일을 오롯이 직업으로 삼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스스로 글을 잘 못 쓴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세상에는 나보다 한국어로 된 글을 잘 쓸뿐더러 좀 더 품격 있고 세련된 표현으로 구사할 수 있는 작가들이 정말이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마치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해야 하느냐,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해야 하느냐의 사안과도 같다. 글을 잘 쓰니까 작가를 해야 한다, 라기보다는 작가를 직업으로 삼는 요령을 알기 때문에 글을 쓴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써놓고도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나도 이해가 안 되지만 사실이 그렇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대필작가로 모두 독립해서 살아간다면 세상은 평화로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나처럼 독립된 사업가는커녕 제대로 된 정규직 또는 계약직 자리를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국문학 전공자들이 많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기가 습득한 글쓰기 기술을 활용하여 직업을 삼고자 하지만, 세상은 단지 ‘글을 잘 쓰는 사람’만을 위한 자리가 별로 없다. 커피를 잘 만드는 사람이 이를 직업으로 삼는다면 하루종일 커피만 만들 수 없다.

 

그는 원두를 고르거나 거래처와 매입 단가를 조율하거나, 서툰 접객 서비스를 다듬어나가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사람도, 이를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꽤 여러 가지 생존 기술과 글 쓰는 능력을 바탕으로 한 응용기를 발휘해야 하는데, 이는 실제로 실무 경험을 통해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고는 얻어낼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서, 직장 경험 자체가 별로 없거나 무언가를 배우기엔 짧은 근무 경험을 가진 이들은 그저 자기가 공부한 기술을 두고 넋두리나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작가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은 대개 후배나 자녀들이 비슷한 일을 하겠다고 하면 일단 뜯어말린다고 한다. 이유는 다르지만 나 또한 그렇다. 어떤 가치를 돈으로 바꾸는 능력을 습득하지 못하면 단순하게 어떤 기술을 잘 쓴다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오기란 점점 더 어려운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인공지능이 지치지 않고 업데이트를 하면서 작문 실력을 보강하고 있고, 요즘 젊은 세대는 평균 학력이 높아 어지간한 자기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데 막힘이 없다. 타고난 문학성이 필요한 예술과 예능 분야를 제외하고, 글쓰기 능력이 탁월하다고 해서 대기업들이 모셔가려고 줄을 서는 경우는 없다.

 

그런데도 너는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냐고? 대답은 간단하다. 그러려고 한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렇게 해서 돈을 벌고 하나의 사업체를 꾸려나간다는 게 아직까지 신기할 정도다. 와, 이게 정말 된다고? 이런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그것도, 남들이 의아해하는 ‘대필작가’라는 직업으로 말이다.

내가 하는 일이 대필작가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일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이 일 또한 서비스직의 일종이고, 그중에서도 ‘고객’과 속 깊은 교류를 해야 일이 완료된다는 측면에서는 컨설팅의 역량도 필요하다. 중요한 건 내가 하는 일이 어엿한 작가라는 타이틀로서 인정받겠다는 고집을 피우지 않는 것이다. 내가 이 일로 돈을 벌 수 있는 건 내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고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내가 제대로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오직 이것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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