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때문에 대필작가는 곧 사라질 것?(자서전, 출판 작가의 위기)
- 리퍼블릭 편집부
- 5월 28일
- 2분 분량

얼마 전 <듀얼 브레인>이란 책을 읽었는데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AI기 일상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는 혁신의 시대, 교육과 비즈니스 등의 분야 전반에서 프롬프트 명령어 하나를 어떻게 써야 이 막강한 힘을 휘둘러서 수혜를 얻을 것인가, 에 관한 지극히 실무적인 내용이었죠.
교수인 저자는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거나 강의를 할 때도 챗지피티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고 하는데, 책을 읽는 내내 제가 궁금했던 건 어째서 그토록 프롬프트 명령어를 잘 쓰는 저자가 왜 책은 챗지피티에게 대필을 맡기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챗지피티가 쓴 글이 매우 훌륭하고, 글쓰기가 자신 없는 초보 작가들에게 활용도가 높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글에서는 단 몇 줄도 챗지피티 활용을 안 한 것처럼 보이는데요. 챗지피티가 쓴 글이 글쓰기가 곤혹스러운 하위 레벨에게는 유용하겠지만, 글쓰기가 익숙하거나 직업과 연관된 상위 레벨의 계층에게는 훌륭한 도구로 쓰일 뿐, 여전히 글쓰기, 책쓰기에게는 미흡하다고만 슬쩍 언급하고 지나갑니다. 현상에 대한 결과(아직까지는 누구도 챗지피티로 책을 내지는 않는다)는 나왔지만 원인은 뾰족하게 밝혀지지는 않은 것 같네요. 저 역시도 이 답을 아주 명쾌하게 내리진 못했습니다.
다만 몇 가지 단서는 있죠.
첫째, 챗지피티가 쓴 글은 지혜가 부족하다.
책을 읽는 궁극적 이유는 지식과 경험을 통해 추론하고 성찰함으로써 나오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인데요. 챗지피티는 논문과 에세이 등을 쓸 때 순식간에 지식을 정리해주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런 통찰력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챗지피티는 우리가 전해준 정보를 학습하고 패턴을 분석해서 다음 문장에 올 말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다고 하니, 결국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처럼 보이지만 그게 아니라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는 셈이죠.
둘째, 챗지피티가 쓴 글은 기계 같다.
글이 기계 같습니다. 번역투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저처럼 읽기에 익숙한 사람이 보기에는 챗지피티나 쓴 글은 금세 탄로가 나죠. ‘아, 이건 AI가 쓴 거구나’라는 걸 이제는 어지간한 사람들도 눈치채는 것 같습니다. 뭐랄까, 명쾌하긴 한데 자기 생각이 없어 보이는 헛똑똑이 같다고 할까요(챗지피티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글쓰기는 여전히 ‘핸드메이드’여야 가치가 빛을 발하는 분야입니다. AI보다 서툴더라도 인간의 마음과 생각을 담은 글이 독자의 호응을 얻어서이겠죠.
셋째, 챗지피티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이게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챗지피티가 쓴 글은 ‘물성’은 있는데 결국 ‘사람’이 없는 거죠. 텍스트는 추출되는데 눈앞에서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글만 잘쓰면 되지 이게 뭔 상관이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 같은 전업 작가가 보기에 이는 꽤 중요한 결격사유인데요. 작가에게 글은 매개일 뿐, 결국 책읽기란 글 너머에 있는 독자와 작가가 정신적으로 만나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글을 쓰기 위해 작가가 만날 수밖에 없는 사람(편집자, 번역자, 독자)도 많고요. 나중에 챗지피티가 로봇화되어 나오더라도, 결국 AI는 사람이 아니라, 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결론은 대필작가는 단지 글만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어떤 성공한 뷰티 사업가와 인터뷰를 하는데 그 분이 한 말이 “저는 사람이 잘 붙는 사람이어서 성공했다”고 하셨는데, 저는 이 표현이 작가에게도 그대로 들어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썼는데, 인터뷰를 했는데 상대방이 자석처럼 붙게 만드는 ‘기묘한’ 능력이 있어야만 상대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금맥을 발견하고 이를 캐내어 글로 써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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