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대필작가의 존재 이유는?
- 리퍼블릭 편집부

- 7시간 전
- 2분 분량

“이제 AI가 글을 척척 쓰는데, 대필작가는 뭐가 다르죠?” 요즘 자주 듣는 질문이에요. 생성형 AI는 눈 깜짝할 사이에 시를 뽑고, 소설 줄거리를 짜고, 기사도 술술 써냅니다. 이 유창한 기술 앞에서 누군가의 삶을 글로 옮기는 대필작가의 역할이 빛바래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단호히 말합니다. AI는 절대 대필작가를 대신할 수 없어요. AI가 데이터를 뒤섞어 글을 ‘만들어’낸다면, 대필작가는 사람의 숨결과 내면을 ‘엮어’냅니다. 이 차이는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1. AI는 단어를 배치할 뿐, 작가는 맥락을 읽어낸다
AI는 자료를 먹고 그럴듯한 문장을 뱉어냅니다. 이력서, 메모, 연설문을 주면 데이터를 분석해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글을 내놓죠. 하지만 대필작가는 의뢰인의 침묵, 망설이는 눈빛,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귀를 기울이는 거예요.
지난해 한 중소기업 사장님의 회고록을 썼어요. 그분은 “우리 회사, 지역에서 제일 큰 공장 됐다”며 자랑스러워하셨죠. AI였다면 그 공장의 매출, 직원 수, 수상 경력을 깔끔하게 정리했을 겁니다. 근데 저는 문득 그분이 “그때 좀 힘들었지”라며 웃는 얼굴 뒤로 살짝 굳은 표정을 놓치지 않았어요. “그 ‘힘들었다’는 순간, 무슨 일이 있었나요?” 물었죠. 그분은 처음으로 털어놨습니다. 창업 초기, 직원들 월급을 맞추느라 집을 담보로 대출받았던 날들, 밤새 가족과 말없이 밥을 먹던 기억을요.
AI는 이런 순간을 ‘잡음’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침묵은 이야기의 심장이었어요. 성공담 뒤의 인간적인 갈등, 그걸 꺼내 글로 엮는 게 대필작가의 일입니다. AI는 말해진 것만 다루지만, 대필작가는 인터뷰이가 말하지 않는 것을 끄집어내는 질문을 던집니다.
2. AI는 문체를 빌리고, 작가는 목소리를 빚는다
AI에게 “유명 작가처럼 써줘” 하면, 그 작가의 문체를 흉내 냅니다. 짧은 문장, 자주 쓰는 단어, 톤까지 비슷하게 따라 하죠. 근데 책의 ‘목소리’는 그런 표면적인 스타일이 아니에요. 그건 한 사람의 삶, 시선, 심지어 숨소리까지 담긴 고유한 울림이에요.
한번은 젊은 사회운동가의 에세이를 썼어요. 그분은 거리에서, 강연장에서, 늘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온 분이었죠. AI였다면 그분의 블로그나 강연 원고를 분석해 ‘정의’, ‘공동체’ 같은 단어를 뿌려놓고 그럴싸한 문장을 만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분과 술 한 잔 나누며 들은, “내가 진짜 화나는 건 사람들이 서로를 안 믿는 거야”라는 말투에서 출발했어요. 그분의 거칠지만 따뜻한 말투, 사람을 끌어당기는 직설적인 에너지를 글로 옮겼습니다. 그분의 한마디를 중심으로 책을 풀어냈죠.
AI는 문체를 빌려오지만, 대필작가는 그 사람의 내면에 스며들어 목소리를 빚습니다. AI의 글은 ‘누구나’ 쓸 법한 느낌이고, 제 글은 ‘그 사람’이어야 해요. 그 차이는 사람의 온기를 담는 데 있습니다.
3. AI는 정보를 늘어놓고, 작가는 이야기를 설계한다
AI는 자료를 빠짐없이 담으려 합니다. 모든 데이터를 ‘중요하다’고 여기며 나열하죠. 하지만 좋은 책은 무엇을 버릴지 아는 용기에서 나옵니다. 대필작가는 이야기를 설계하며 핵심을 골라냅니다.
작년에 한 비영리 단체의 10주년 기념책을 작업했어요. 자료는 산더미였죠—보고서, 사진, 회의록까지. AI라면 이걸 죄다 정리해 두꺼운 문서로 만들었을 거예요. 근데 저는 단체 이사장님께 물었어요. “이 책으로 사람들에게 딱 하나만 전하고 싶다면, 뭐라고 하고 싶으신가요?” 답은 “우리가 지역에 뿌리내렸다는 희망”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자료의 80%를 과감히 덜어냈습니다. 그 희망을 보여주는 몇 개의 생생한 순간—주민들과 함께한 마을 축제, 한 청년의 삶을 바꾼 교육 프로그램—만 골라 이야기를 엮었죠.
AI는 ‘모두 담기’에 집착하지만, 저는 ‘버릴 것’을 선택합니다. 그 선택이 독자의 가슴에 닿는 이야기를 만듭니다. 이건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잇는 통찰이에요.
AI는 끝없이 글을 쏟아낼 수 있어요. 근데 그건 원본 없는 복제품, 사람의 온기 없는 껍데기일 뿐이에요. 대필작가가 만드는 건 단순한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의 삶에 대한 증언입니다. 의뢰인의 침묵을 듣고, 그들의 목소리를 살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야기를 전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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