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정백서 제작, 첫 상담에서 견적보다 ‘기준’을 묻는 이유


한 지자체 담당자에게 군정백서 제작 문의를 받았다. 과업 내용이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참고 도서를 보며 제작 방향을 잡으려는 단계였다. 나는 곧바로 비용을 제시하는 대신, 제작 완료 목표 시점이 언제인지 먼저 물었다. 백서 제작의 출발점은 완벽하게 작성된 기획서가 아니라, 상담을 통해 필수적인 기준들을 세워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예시본과 견적을 묻는 담당자에게 일정부터 확인한 이유는 명확하다. 납품일을 역산해야 기획, 자료 수집, 디자인, 인쇄에 이르는 전체 작업의 타당성을 검토할 수 있다. 과업지시서가 확정되지 않은 상태라면, 이미 정해진 사양에 맞춰 견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참고 사례를 보며 현재 상황에 맞는 제작 조건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견적도 부탁드립니다”라는 요청에 즉시 숫자를 답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백서 제작비는 페이지 수, 인쇄 부수, 인포그래픽 등 시각화 수준에 따라 예산 범위가 크게 달라진다. 상담 중 200페이지라는 대략적인 분량이 언급되었으나, 인쇄 부수는 미정이었다. 페이지 수가 책에 담아낼 ‘내용의 규모’를 결정한다면, 인쇄 부수는 책이 배포될 ‘목적과 대상’을 의미한다. 주요 사업 위주로 엮을지 분야별로 넓게 다룰지, 완성된 백서를 어느 기관에 몇 부씩 전달할지에 대한 개략적인 밑그림이 있어야 정확한 비용을 산출할 수 있다.
타 기관의 예시본을 참고하는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한다. 다른 지자체의 결과물은 그대로 따라 만들기 위한 답안지가 아니다. 목차의 흐름, 사진과 통계의 배치, 페이지당 정보량을 살펴보며 우리 군이 보유한 자료의 수준과 대조하는 척도로 삼아야 한다. “전반적인 구성은 좋지만 우리는 사진 자료가 부족하다”, “특정 핵심 사업을 더 비중 있게 다루고 싶다”와 같은 분석이 수반될 때 실질적인 제작 논의가 가능해진다.
이전 사례를 바탕으로 참고 예산을 안내하더라도, 이는 세부 조건에 따라 언제든 변동될 수 있는 가견적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담당자 역시 여러 업체의 견적 총액을 단순 비교하기에 앞서, 해당 예산으로 제작사가 기획, 원고 윤문, 디자인 등 어느 단계까지 과업을 수행하는지 그 범위를 정확히 짚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첫 상담의 목적은 당장의 계약이 아니라, 프로젝트 담당자가 내부적으로 점검해야 할 질문을 선명하게 만드는 데 있다. 백서에 기록할 기간과 내용, 확보된 로데이터(원고, 사진, 통계), 예상 페이지와 부수, 완료 시점, 그리고 군청과 제작사의 명확한 업무 분담이다. 모든 조건을 완벽히 정해오라고 요구하는 대신, 현재 확정된 요건과 미정인 요소를 분리해 다음 단계를 짚어주는 것. 그것이 방대한 행정 기록을 한 권의 백서로 엮어내기 위한 가장 빠르고 안정적인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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