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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원고를 망치지 않고, 팔리는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7월 20일
3분 분량

내 원고를 지키면서 팔리는 책을 만들 수 있을까요?

-예비 저자와 출판기획자가 나눈 반기획출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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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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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18년째 명상상담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유가족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해 책으로 펴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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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저자의 전문성을 살리면서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드는 리퍼블릭미디어 대표 출판기획자.

비 내리는 오후, 출판사 상담실.

혜원 스님이 두툼한 원고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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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사별 유가족을 위한 명상상담 프로그램을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일곱 단계로 구성된 프로그램인데, 120명 넘게 참여했어요. 죄책감과 우울에 시달리던 분들이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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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현장 경험과 프로그램의 성과가 분명하네요. 다만 현재 원고는 일반 독자를 위한 단행본보다는 상담 프로그램 워크북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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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다른 출판사에서도 에세이처럼 바꿔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쉽게 풀다 보면 제가 만든 프로그램의 핵심이 무너질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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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반기획출판은 전문성을 없애거나 내용을 가볍게 만드는 작업이 아닙니다. 독자가 책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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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길을 만든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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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지금 원고는 프로그램을 이미 아는 사람에게는 유용합니다. 하지만 처음 책을 펼친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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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를 잘 알아야 읽을 수 있나?”

“상담 전문가를 위한 교재인가?”

“내 슬픔과 이 이론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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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독자보다 먼저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론 앞에 상담 장면을 넣고, 각 단계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참여자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구성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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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내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전달하는 순서를 바꾸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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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맞습니다. 전문성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토대로 독자를 위한 가이드를 만들어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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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그러면 이 책은 서점에서 어디에 놓이게 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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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그것부터 정해야 합니다. 불교의 연기법과 죽음에 관한 가르침이 중심이라면 불교 심리상담 분야로 가야 합니다. 종교색을 줄이고 일반 심리치유 분야로 가려면 불교 개념을 대중의 언어로 더 많이 풀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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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불교적 뿌리는 지키고 싶습니다. 다만 불자가 아닌 사람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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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그렇다면 정체성은 지키되 제목, 부제, 목차와 사례를 통해 문턱을 낮추는 방향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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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그런데 반기획출판은 일반 기획출판이나 자비출판과 무엇이 다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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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기획출판은 출판사가 시장성을 판단해 제작비를 부담하는 방식입니다. 자비출판은 저자가 비용을 내고 원하는 형태의 책을 제작하는 방식이고요.

반기획출판은 그 중간입니다. 저자가 제작비 일부를 부담하지만 출판사도 기획과 판매에 책임을 집니다. 저자가 돈을 냈다고 해서 원고를 그대로 인쇄하지 않고, 독자에게 판매할 수 있는 책이 되도록 함께 수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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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출판사도 책이 팔려야 이익이 생기는 구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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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목과 표지, 정가, 목차를 저자의 취향만으로 정하지 않습니다. 저자와 출판사가 함께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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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비용에는 무엇이 포함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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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출판기획, 원고 편집, 교정·교열, 표지와 내지 디자인, 종이책과 전자책 제작, 서점 유통, 보도자료와 기본적인 온라인 홍보가 포함됩니다. 추가 인쇄나 별도 광고는 협의가 필요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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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책이 나온 뒤에도 홍보를 계속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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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제작은 두세 달이면 끝나지만 판매와 유통은 그 뒤부터 시작됩니다. 종이책을 먼저 출간하고, 전자책 입점과 온라인 콘텐츠를 순차적으로 연결합니다. 스님처럼 불교신문이나 불교방송과 인연이 있다면 그 네트워크도 활용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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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책이 나오면 절에서 출판기념회를 열고 법공양용으로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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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그렇다면 초기 독자 기반이 있는 셈입니다. 다만 저자가 인쇄비를 부담해 책을 가져가더라도 판매할 때는 도서정가제를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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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저작권은 어떻게 됩니까? 이 프로그램은 제가 오랫동안 연구해 직접 만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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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출판사가 갖는 것은 계약 기간 동안 책을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는 출판권입니다. 계약이 끝나고 재계약하지 않으면 다른 출판사에서 개정판을 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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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제목은 유지하고 싶습니다. 죽음이 본래 없다는 의미인데, 독자에게 너무 어렵게 느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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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제목을 반드시 버릴 필요는 없습니다. 대신 부제로 의미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제목 후보와 표지 시안을 함께 놓고 최종적으로 판단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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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이 메모를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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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이제 반기획출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저자가 돈을 내고 책을 받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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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저자는 전문성과 경험을 내놓고, 출판사는 기획과 편집, 유통의 전문성을 보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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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스님

비용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함께 나누는 출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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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표

맞습니다. 원고를 지키면서도 독자에게 닿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반기획출판의 역할입니다.

반기획출판은 모든 저자에게 맞는 방식은 아니다. 원고를 전혀 수정하고 싶지 않다면 자비출판이 적합할 수 있고

, 출판사가 모든 비용을 부담할 만큼 시장성이 높다면 기획출판에 도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콘텐츠와 독자 기반은 있으면서,

이를 대중적인 책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필요한 저자라면 반기획출판이 현실적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좋은 원고가 저절로 좋은 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경험과 출판사의 기획이 만날 때, 원고는 비로소 독자에게 닿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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