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집제작 중요한 건 자격일까 실력일까?
- 리퍼블릭 편집부

- 19시간 전
- 4분 분량
중복부터 대략 추석 전까지의 시즌은 사례집의 계절입니다. 이맘때 리퍼블릭미디어는 거짓말 조금 보태 전국 팔도를 돌면서 온갖 보건소, 주민센터, 기업체 등을 탐방하곤 하죠. 운이 좋은 해에는 대중교통이 닿는 지역이 동선으로 연결되지만, 그렇지 않은 해가 더 많습니다. 오지에 가까운 곳을 취재 동선으로 연결하려면 며칠쯤 지방 숙박을 하는 일도 각오해야 하죠.
오늘은 다행히(?) 강원도를 KTX로 다녀오는 호사를 누렸습니다. 만종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요소수 제작 기업을 다녀왔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한 사례집에 등장할 업체인데 거의 모든 중소기업이 그렇겠지만 이런 요청은 손이 열 개라도 모자른 대표들에게 달갑지 않고 귀찮기만 합니다. 그래도 오늘 만난 대표님은 10분씩 쪼개 쓰는 일정에도 저희 취재와 촬영에 적극적으로 응해주셨죠.(물론 직원들은 대표님 맘과는 또 달랐으나...)


사례집 취재를 위해 만종역 KTX를 이용해서 다녀온 K케미칼 업체
주로 창업 3-5년 차인 기업들을 사례집에 넣다 보니, 비교적 스타트업이라 불리는 신생 업체들을 만나게 됩니다. 올해까진 그럭저럭 하고 있으니 앞으로 어떻게 될지, 내년에도 회사가 존재할지 어떨지 운명을 알 수 없는 회사들... 대기업이 아닌 한, 사업을 한다는 건 하루, 한주, 한 달이 새롭게 위기가 아닌 때가 없는 듯합니다. 다만 누군가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면서 성장을 하거나 반대로 기회인줄 알았다가 위기를 맞고 사라지는 것일 테죠.
아마도 사례집제작 업체를 찾아보신 주무관님들이라면 아시겠지만, 사례집은 디자인업체는 많지만 현장 취재를 기획과 연결하고, 이를 콘텐츠화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기획과 글을 완성한 상태로 디자인만 하고 인쇄물을 만드는 상황과, 기획이라는 첫 삽을 떠서 콘텐츠를 연결해서 만들어 나가는 과정은 전혀 다른 맥락으로 전개되기 때문이죠. 취재처를 선정하는 기준과 어떤 주제를 취재로 이끌어내느냐의 문제는 필연적으로 기획의도와 연결되는데, 기획의도는 특정 전문 과업의 이해도와 핵심 메시지를 도출해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기획력은 현장 취재와 사례집 집필 경험을 통해서 충분히 쌓여 있어야 하고, 사례집 제작을 의뢰하는 해당 기관과 부서의 니즈를 연결시킬 수 있는 안목도 필요하거든요.
예컨대 중진공의 성과사례집의 경우와 농진공의 연구사례집은 각각의 목적과 니즈가 확연히 다르거든요. 이런 차이를 잘 알고 발주처와의 조율과 협의를 통해 사례집 제작 방향을 이끌어나가는 것이 기획의 첫 단추입니다. 사실 이것만 잘 해도 나머지 취재와 집필, 디자인과 인쇄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죠.
사례집제작을 하는 공공기관 발주처가 궁금해하고 알고 싶은 내용 중에서는 수행 기관의 서류상의 자격일 겁니다. 예를 들어 여성기업인 경우나 각종 인증서가 있어야만 과업 수행이 가능한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오늘도 한 기관에서 우수사례집 제작 문의를 주셨는데, 홈페이지의 포트폴리오보다 먼저 확인하신 것이 여성기업 여부와 계약이 가능한 사업자 조건이었습니다. 수의계약을 검토하고 있는 기관이라면 제작사가 일을 잘하는지만큼이나, 내부 계약 기준에 맞는 수행 주체인지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여성기업이면서 중소기업자 간 경쟁제품과 관련한 조건까지 충족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기서 사례집 제작사를 고를 때 조금 복잡해집니다.
디자인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든다고 바로 계약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계약 조건을 충족한다고 해서 사례집을 잘 만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공기관 우수사례집은 단순히 인터뷰 몇 건을 받아 예쁘게 편집하는 책자가 아닙니다. 해당 사업이 왜 만들어졌는지, 어떤 정책적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선정된 기업이나 기관의 어떤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지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같은 '우수사례'라도 사업에 따라 보여줘야 할 장면이 완전히 다릅니다.
창업지원 사업이라면 지원 전후 기업의 변화가 중요할 수 있고, 연구개발 사업이라면 기술개발 과정과 사업화 성과가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 활성화 사업이라면 매출이나 고용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지역사회 변화가 핵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례집 기획 단계에서 가장 먼저 "무엇을 물어볼 것인가"보다 "이 책을 읽고 무엇을 기억하게 할 것인가"를 정하는 편입니다.
그 기준이 잡히면 취재 대상 선정부터 질문지가 달라집니다.
대표자의 창업 이야기를 길게 들어야 하는 기업이 있고, 지원사업 참여 전후의 수치를 꼼꼼하게 확인해야 하는 기업도 있습니다. 어떤 사례는 대표보다 실무자를 만나는 것이 훨씬 정확하고, 연구 사례라면 연구책임자와 사업화 담당자의 이야기를 함께 들어야 하나의 사례가 완성되기도 합니다.
현장에 나가보면 처음 전달받은 자료와 실제 이야기가 다른 경우도 많습니다.
"우리 회사는 특별한 이야기가 없는데요."
인터뷰 초반에는 이렇게 말씀하시던 대표님이 한 시간쯤 지나면 가장 재미있는 사례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서면 자료만 보면 엄청난 성공 사례처럼 보이지만 막상 취재를 해보면 사례집의 기획 방향과 맞지 않아 내용을 다시 구성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현장 취재의 역할은 받은 자료와는 별개로 흩어져 있는 내용을 사례집의 목적에 맞는 하나의 이야기로 다시 맥락을 연결하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을 일정 안에서 끝내려면 발주처와 제작사의 역할도 초기에 꽤 명확하게 나눠두는 편이 좋습니다.
사례집 견적을 문의하실 때는 대략적으로라도 다음 정도는 정리되어 있으면 제작 방향을 잡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사례집 제작 목적
예상 사례 수와 취재 대상
취재 방식과 지역
예상 페이지 수
인쇄 부수와 제작 사양
최종 납품 일정
필요한 계약·인증 조건
실제 어제 저희 상담 문의에서도 마감 시점과 페이지 수, 인쇄 부수를 먼저 확인하게 됩니다. 같은 사례집이라도 10개 기업을 수도권에서 취재하는 것과 전국 30개 기관을 방문하는 것은 제작 구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100페이지 200부와 250페이지 1,000부 역시 견적이 같을 수 없습니다. 이번 문의 기관 역시 12월 중순 마감을 염두에 두고 있었고, 상세 과업 자료를 토대로 견적과 수행 가능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습니다.
특히 10월 이후 사례집 제작을 시작하려는 기관이라면 일정 관리가 더욱 중요합니다.
연말에는 대부분의 공공기관 사업 종료 시점이 겹칩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일정도 몰리고, 원고 검수와 내부 결재도 생각보다 오래 걸립니다. 취재는 끝났는데 확인해야 할 통계가 나오지 않거나, 담당자가 바뀌거나, 인터뷰 대상 기업에서 원고 확인이 늦어지는 일도 흔합니다.
따라서 12월 납품이라면 11월에 시작하는 것보다, 가능하면 늦여름이나 초가을부터 기획과 취재 대상 섭외를 준비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사례집을 만드는 일은 결국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듣는 일입니다.
강원도의 요소수 공장일 수도 있고, 전남의 농촌마을일 수도 있고, 수도권 어딘가 작은 사무실에서 이제 막 첫 제품을 만들고 있는 스타트업일 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아직 성공인지 실패인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어떤 기업은 어려운 상황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았고, 어떤 기관은 작은 사업 하나를 몇 년에 걸쳐 지역의 변화로 만들어냈습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를 기록해 두는 것이 사례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례집은 성과를 자랑하는 책이라기보다, 성과가 만들어진 과정을 남기는 기록에 조금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좋은 사례집은 그 기록을 읽은 다음 사람이
"우리도 한번 해볼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어야 합니다.
올해도 아마 추석을 지나면 다시 전국의 기차역과 버스터미널을 꽤 많이 돌아다니게 될 것 같습니다.
어느 지역의 어느 회사를 찾아가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렇게 모은 이야기들이 연말쯤 한 권의 책이 되어 있을 테고, 다음 해에는 또 다른 누군가가 그 사례를 참고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있겠죠.
그래서 힘들어도 이 계절이 오면 다시 카메라와 노트북을 챙기게 됩니다.
사례집의 계절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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