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출판을 해도 될지 자신이 없다면


얼마 전 함께 책을 만들고 있는 대표님이 친구 한 분을 모시고 왔다. 아주 막역한 사이라고 했다. 대표님이 책을 준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 나도 짬짬이 쓰고 있다”고 하셨단다. 그러자 대표님이 “그럼 한번 만나 봐라”를 몇 번이나, 거의 명령조로 하셨다고. 그렇게 마련된 자리였다.
그분은 공공기관에서 오래 일하셨고, 후배들 앞에서 강의도 하는 자리에 계신 분이다. 마주 앉아 30분쯤 이야기를 나눴다. 그분이 진짜로 묻고 싶었던 건 마지막 즈음에 나왔다.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게 가능성이 있는 일인지, 아니면 억지로 짜내야 하는 일인지.”
쓰다 만 20쪽
그분 손에는 이미 꽤 많은 게 있었다.
어려운 시절을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해 볼 건 다 해 봤다고 하셨다. 삼남 삼녀 중 한 명이고, 어린 시절엔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형님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갔는데, 그때 형님이 보낸 편지를 지금까지 다 간직하고 계셨다. 몇 해 전에는 그 편지들을 스캔해서 작은 책자로 만들어 형제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건넨 쪽지와 편지도 모아 두셨다고 했다.
후배들 앞에서 한 강의도 있었다. 입직하기 전의 이야기와 입직한 뒤의 이야기를 두 번에 나눠 하기로 했는데, 1편은 반응이 무척 좋았다. 2편은 자료를 다 만들어 두고 날짜까지 잡았는데, 그 직전에 발령이 나서 결국 못 하고 오셨다. 하려던 말은 이런 것이었다. 지금 좋다고 자만하지 말고, 지금 힘들다고 좌절하지 마라. 다 지나간다.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꿈은 있다.
책으로 쓰고 싶은 것도 그 이야기였다. 하굣길, 도시락처럼 기억나는 장면을 하나씩 꺼내 쓰고, 그 사이사이에 형님의 편지와 아이들의 쪽지를 넣는다. 그러면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가치 있는 것들을 한데 보관할 수 있겠다고.
그래서 에필로그부터 꼭지 제목을 하나씩 달아 가며 20쪽쯤 써 보셨다. 에피소드도 스무 개 정도 뽑아 두셨다. 그런데 거기서 멈췄다. “끄집어냈는데도 막 귀찮아지는 거예요. 이것저것 섞이다 보니까.”
나는 이 말이 반가웠다. 이게 정확히 책을 쓰는 사람이 처음 부딪히는 벽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지친다
책을 만드는 과정을 아주 단순하게 줄이면 이렇다. 글이 있고, 그 글을 잘 다듬어 주는 편집자가 있고, 디자인을 잘해서 내면 끝이다.
그런데 그 사이사이에 소통이 정말 많다. 인터뷰를 하고, 의견을 듣고, 반영하고, 우리도 의견을 드리고, 다시 조율한다. 순수하게 책 한 권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그런데 이 주고받는 과정까지 합치면 반년 가까이 걸리는 일도 흔하다. 그분을 모시고 온 대표님도 지금 반년째 함께하고 계신다.
10년 가까이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저자를 만났다. 준비를 많이 한 분도, 전혀 안 한 분도 다 어려워하신다. 특히 처음 책을 내는 분은 중간에 지친다. “내가 굳이 왜 이렇게까지 해서 책을 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든다. 그러다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마음먹고 준비되면 다시 하겠습니다” 하고 멈추는 분도 적지 않다.
등은 밀어 드릴 수 있지만
대표님이 우리에게 “등을 좀 밀어 달라”고 하셨다는 이야기를 그분께 전했다. 우리는 기꺼이 민다. 다만 한계가 있다. 그분도 바로 말씀하셨다. “그건 본인이 하는 거죠.”
맞다. 책의 주인공은 편집자가 아니라 저자다. 저자가 편집이라는 전문 영역을 모르니 편집자가 돕는 것이다. 이 글의 주인공은 나이고, 이 글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내가 중심에 서야 한다는 의지가 없으면, 아까 그분 말씀처럼 중간에 귀찮아지고 멈춘다.
내 글의 완성도는 괜찮을까, 필력이 될까,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까, 나오면 그럴듯해 보일까. 다들 이런 걱정을 하신다. 그런데 나는 이건 다 부수적인 걱정이라고 말씀드린다. 그런 건 우리가 어떻게든 도와서 높여 갈 수 있다. 정말 중요한 건 하나다. 나는 이 책을 꼭 내고 싶은가.
그 마음이 100이라면 70으로는 부족하다. 80, 90은 차 있어야 끝까지 가서 결과가 나온다.
말을 잘하는 사람, 글을 잘 쓰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분은 말을 잘하시는 분이었다. 본인은 앞에 나가서 노는 듯이 말하는 건 못 한다고 하셨지만, 판을 깔아 놓은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잘하신다고. 강의 반응이 좋았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그런데 좋은 스피커가 좋은 라이터는 아닌 경우가 많다. 반대로 글은 잘 쓰는데 말하라고 하면 쭈뼛거리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내가 그렇다. 둘 다 잘하는 사람은 드물다.
머릿속엔 다 있는데 글로 옮기기가 어려운 건 그래서다. 글은 한 번에 후두둑 나오지 않는다. 진득하게 앉아 있어야 하고, 한번 붙잡으면 서너 시간이 훌쩍 간다. 그런데 본업이 있는 분이 그런 시간을 통째로 내기는 쉽지 않다.

형제의 편지, 아이들의 쪽지, 쓰다 만 원고. 재료는 이미 손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우리가 하는 일이 있다. 메모나 짧은 글로 적어 두신 게 있으면, 그걸 두고 하나씩 여쭤보며 끌어낸다. 에피소드 하나를 아무리 써도 네 줄밖에 안 나온다면, 그 주제로 대화를 해 본다. 질문하고, 답하시는 사이에 또 다른 장면이 떠오르고, 이야기가 조금씩 자란다. 그렇게 나온 것을 하나의 문단으로, 메시지가 있는 한 꼭지로 다듬어 간다.
물론 그 과정에서 부딪힘도 있다. 좋은 의미에서다. 저자에게는 자기 글의 스타일이 있고, 가고 싶은 방향이 있다. 그걸 맞춰 가며 파트너로서 호흡을 찾는 데도 시간이 든다. 열 번쯤 만나면서 이걸 같이 해 나갈 수 있겠는가. 그것도 결국 저자가 정할 일이다.
누구에게 건넬 책인가
그분이 물으셨다. “그러면 어떤 방향으로 잡는 게 제일 나을까요?”
나는 이게 좋다고 먼저 말씀드리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여쭤본다. 책이 나오면 누구에게 건네면서 “이거 읽어 봐” 하실 건가요.
보통 세 갈래다. 나를 모르는 일반 독자, 예를 들면 비슷한 연배에 인생 2막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경우. 같은 조직의 후배들에게 내 경험으로 비전과 메시지를 분명히 전하고 싶은 경우. 아니면 가족과 손주들에게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선명한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경우. 어느 쪽이든 의미가 있다. 그런데 셋은 다 다른 책이다.
대부분은 셋 다 하고 싶어 하신다. 세상에 메시지도 주고 싶고, 후배들에게 귀감도 되고 싶고, 가족 기록도 남기고 싶다. 그러다 어느 하나도 못 잡는 경우가 생긴다. 셋을 다 담을 수는 있다. 다만 주와 부는 있어야 한다.
그분은 “그래도 꿈은 있다”는 메시지까지는 정해 두셨다. 그런데 누구에게 좌절하지 말라고 말할 것인지, 일반 독자인지 조직인지는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하셨다. 대부분 그렇다. 글감과 주제는 몇 년씩 고민하면서, 이 질문에는 선뜻 답하지 못하신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처럼, 이걸 같이 찾아 드리는 것도 우리 일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탐색 인터뷰를 한다. 여러 각도로 질문을 드린다. 답하시는 사이에 저자 스스로 정리가 된다. “내가 원하는 게 A인 줄 알았는데, 진짜 원하는 건 B구나.” 이게 저자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 내가 “B가 좋습니다” 하고 끌고 가면, 저자는 정작 A를 원하면서 B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면 오래 못 간다.
독자가 정해지면 나머지는 순서대로 따라온다. 수필로 할지 자기계발서처럼 할지 장르가 정해지고, 존댓말로 부드럽게 쓸지 평서문으로 담백하게 쓸지 메시지를 찌르듯 쓸지 문체가 정해지고, 그다음에 구조가 정해진다. 뒤의 것을 아무리 고민해도 독자가 정해지지 않으면 방향이 또 달라진다. 그래서 첫 번째가 가장 중요하다. 우리와 하든 다른 출판사와 하든 마찬가지다.
될까요, 안 될까요
다시 그분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가능성이 있느냐, 억지로 짜내야 하느냐.
그분이 하시는 일은 결론이 있는 일이다. 증거를 모으고 절차를 밟으면 답이 나온다. 그래서 글도 전문가가 들어 보면 될지 안 될지 딱 보이지 않느냐고 하셨다. 여기서 많은 분이 오해를 하신다.
많은 독자를 설득해서 베스트셀러를 내는 게 목적이라면 그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그런데 “이건 그냥 자서전인데, 솔직히 별로 안 될 것 같지 않아요?” 하고 물으시면 나는 더 드릴 말씀이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시작하면 끝까지 못 가기 때문이다.
자전적인 이야기는 남이 보면 솔직히 넷플릭스보다 재미없다. 그런데 넷플릭스만큼 재미있지 않으면 가치가 없느냐 하면, 그건 다른 문제다. 한 명이 읽든 열 명이 읽든, 아니면 나 혼자 기록으로 만족하든, 책으로 나왔을 때 의미가 있다. 그 생각 하나를 붙들고 끝까지 가는 일이다. 단 몇 명이라도 내 머릿속에 있는 그 사람들이 꼭 읽어 줬으면 좋겠다, 이 마음이 80, 90 차 있어야 하는 작업이다.
그러니 될 것 같다, 안 될 것 같다로 접근하면 답이 안 나온다. 그분을 모시고 온 대표님도 마찬가지였다. 사업을 오래 하셨으니 경험이 있고, 그걸 홀로 싸우는 다른 사업가들에게 건네는 책을 쓰고 계신다. 그분도 그분대로 말을 걸고 싶은 사람이 있고, 건네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차이는 그것뿐이다.
혼자 써 보겠다는 분께
그분은 원래 혼자 해 보고 싶으셨다고 했다. 작가가 자기가 써서 자기가 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고. 50쪽쯤 직접 쓰고, 편지와 쪽지를 양념처럼 넣으면 100쪽에서 150쪽은 되지 않을까. 그다음에 전문가가 표현에 살을 붙여 주면 되지 않을까.
목표를 잡고 마감을 정해서 써 나가시는 건 정말 좋다. 원저자로서 역량을 갖추고 시작하겠다는 것도 맞는 말씀이다. 다만 몇 가지는 말씀드렸다.
먼저 분량이다. 서점에서 보는 책 한 권은 보통 250쪽 안팎이다. 150쪽이면 많이 얇다. 그만큼 쓰려면 A4에 글자 크기 10포인트, 줄 간격 160퍼센트로 잡고 100쪽쯤 써야 한다.
다음은 구성이다. 한 권 분량을 쓸 수 있는 사람에게도 그걸 한 권의 책으로 짜는 일은 꽤 낯설다. 전문 작가도 편집자 없이는 책을 완성하지 못한다. 그리고 직접 쓰신 원고가 있어도, 정한 독자와 장르에 맞게 기획하려면 결국 손을 대야 한다. 표현에 살을 붙이는 것만으로는 책이 되지 않는다.
마지막은 기간이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지금 있는 재료를 더 풀어 써 보겠다면, 석 달이든 넉 달이든 기간을 정하고 스스로 얼마나 써지는지 보시라. 1년, 2년이 지나도 거기서 크게 나아가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나아갈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나는 본다. 그때는 혼자 쓰는 방식을 바꿀 때다.
자신이 없다는 분께
그날 그분은 대표님과 좀 더 이야기해 보고, 우선 스스로 50쪽은 써 보겠다고 하셨다. 나는 그게 좋은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자비출판을 해도 될지 자신이 없다는 분께, 나는 될지 안 될지는 대답하지 않는다. 대신 이 질문을 드린다.
이 책을 누구에게 건네고 싶은가. 그 사람이 읽어 줬으면 하는 마음이 얼마나 차 있는가.
이 두 가지에 답할 수 있으면, 나머지는 우리가 도울 수 있다. 필력도, 구성도, 그럴듯한 모양새도. 아직 답이 흐릿하다면 그것도 괜찮다. 같이 찾아가면 된다. 다만 끝까지 가겠다는 마음만큼은 저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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