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권면에는 무엇을 적는가


“표지에는 부제가 있는데, 판권면엔 없네요.”
인쇄 직전 마지막 교정지를 같이 보다가 이런 말이 나오면 다들 잠깐 조용해진다. 인쇄소에 넘기기 전이라 다행인 경우다. 판권면은 책에서 가장 작은 면이지만, 한 번 찍히고 나면 고칠 수 없는 면이기도 하다.
판권면은 대개 책 맨 뒤나 앞쪽 한 면에 들어간다. 제목과 저자, 발행처, 발행일, ISBN, 정가가 적혀 있다. 독자는 대부분 그냥 넘기지만, 나는 이 면을 책의 신분증이라고 부른다. 여기 적힌 정보가 서점과 도서관의 데이터로 이어지고, 이후 이 책에 관한 서지 정보의 출발점이 된다.
그리고 인쇄된 뒤에는 고칠 수 없다. 재쇄에서 바로잡을 수는 있지만 이미 나간 책에는 그대로 남는다.
들어가는 항목
항목 | 내용 | 주의 |
도서명 | 표지와 일치 | 부제를 넣을지 통일한다 |
저자 | 실명 또는 필명 | 공저라면 순서를 확정한다 |
발행인 | 발행처의 대표 | 실제 등록 정보와 맞춘다 |
발행처 | 출판사명 | 신고한 명칭 그대로 |
발행일 | 초판 1쇄 발행일 | 인쇄일이 아니다 |
주소·연락처 | 발행처 정보 | 바뀔 가능성을 생각한다 |
ISBN | 부여받은 번호 | 바코드와 일치해야 한다 |
정가 | 판매 가격 | 뒤표지와 일치해야 한다 |
여기에 편집, 디자인, 교정, 인쇄처럼 제작에 참여한 사람을 적는 경우가 많다. 저작권 표시와 무단 전재 금지 문구, 파본 교환 안내도 들어간다.
발행일은 꼭 따로 확인하시라. 인쇄가 끝난 날과 다를 수 있다. ISBN은 인쇄와 출판 전에 신청하도록 되어 있어서, 신청할 때 적은 발행 예정일과 판권면 날짜가 서로 맞는지 보셔야 한다.
저작권 표시
판권면에 저작권 표시를 넣는 건 관행이다. 다만 표시가 권리를 만드는 건 아니다. 저작권은 창작과 동시에 생기기 때문에 표시가 없어도 보호된다. 표시는 권리자가 누구인지 알리고 무단 이용을 막는 역할을 한다.
저작권자 이름과 연도를 적는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한다는 문구를 함께 넣는 경우가 많다.
공저라면 공동 저작권자를 모두 적는다.
번역서라면 원저작권과 번역 저작권을 나눠 적는다.
공저인데 한 사람만 적혀 있으면 나중에 권리 관계가 흐려진다. 외부에서 받은 사진이나 일러스트가 있다면 그 권리자도 밝혀 두시는 편이 좋다. 그리고 판권면 표시와 실제 권리는 별개다. 계약서에 정한 내용과 판권면이 어긋나지 않는지 맞춰 보시라.
자주 어긋나는 세 곳

판권면은 표지, 뒤표지, 바코드와 맞춰 보고, 여기 적힌 정보는 여러 곳으로 퍼진다.
표지와 도서명. 표지에는 부제가 있는데 판권면에는 없거나, 띄어쓰기가 다른 경우다. 서지 정보가 서로 다르게 잡히면 검색에서 혼선이 생긴다. 두 곳을 나란히 놓고 글자 단위로 대조하시라.
정가. 정가는 판권면과 뒤표지에 함께 나온다. 제작 중에 정가가 바뀌면 한 곳만 고치고 다른 곳을 놓치기 쉽다. ISBN 신청 때 적은 가격과 서점에 등록할 가격도 같이 맞춰 보시라. 참고로 국내 ISBN 옆 다섯 자리 부가기호는 독자 대상, 발행 형태, 내용 분류를 나타내는 번호이고 가격 정보는 들어 있지 않다. 그러니 가격은 바코드가 아니라 사람이 눈으로 맞춰 봐야 한다.
ISBN과 바코드. 드물지만 치명적이다. 번호가 어긋나면 서점 등록과 유통에서 문제가 생긴다. 전자책과 종이책을 함께 낼 때 특히 조심하시라. 형태가 다르면 번호도 다른데, 같은 파일에서 작업하다 섞이는 일이 있다.
확인하는 순서
도서명을 표지와 대조한다. 부제와 띄어쓰기까지.
저자명 표기를 확인한다. 한자나 영문을 함께 적었다면 그것도.
발행처명이 신고한 명칭과 같은지 본다.
발행일을 확정한다. ISBN 신청 때 적은 발행 예정일과 맞춘다.
ISBN을 바코드와 숫자 하나하나 대조한다.
정가를 판권면과 뒤표지에서 확인한다.
제작 참여자 이름의 한자와 표기를 확인한다.
다섯째는 꼭 숫자를 하나씩 소리 내어 읽으며 대조하시라. 눈으로 훑으면 가운데 자리가 바뀐 걸 놓친다. 일곱째도 챙기시라. 함께 일한 사람의 이름이 틀리면 돌이킬 수 없고, 미안함도 오래 간다.
판권면의 정보가 가는 곳
이 면에 적힌 정보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 왜 정확해야 하는지가 분명해진다.
ISBN을 신청할 때 같은 정보가 들어간다.
납본하면 국가 서지에 등록되어 도서관 검색에 남는다.
서점이 도서 정보를 등록할 때 이 데이터를 쓴다.
누군가 이 책을 인용할 때 여기서 서지 사항을 가져간다.
생성형 AI가 이 책에 관해 답할 때 참고하는 것도 이렇게 공개된 서지 정보일 가능성이 크다.
넷째를 짚고 싶다. 학술 인용이든 기사 인용이든 “저자, 『서명』, 발행처, 발행연도” 형식으로 적는다. 이 정보가 전부 판권면에서 나온다. 판권면이 틀리면 그 오류가 인용을 따라 복제되고, 한 번 퍼지면 되돌리기 어렵다.
다섯째도 같은 이야기다. 제목, 저자, 발행처, 발행일이 정리된 형태로 남아 있어야 이 책이 정보로 잡힌다. 이 정보가 비어 있거나 틀리면 책은 있어도 데이터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록물이라면 더 넣는 것
사사나 백서, 사례집이라면 판권면에 더 적는 항목이 있다.
발행 주체. 기관명과 부서까지 적기도 한다.
기획·편찬 담당. 누가 이 기록을 만들었는지.
자료 제공처. 사진이나 데이터의 출처.
비매품 표시. 판매하지 않는 책이라면.
기록물에서는 기획·편찬 담당이 중요하다. 몇 년 뒤 이 자료를 보는 사람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 비매품 표시도 확인하시라. 비매품인데 정가가 적혀 있거나, 판매할 책인데 비매품으로 적혀 있으면 유통에서 문제가 생긴다.
공공기관 간행물이라면 발간등록번호도 챙기셔야 한다. 공공기관은 간행물을 내기 전에 이 번호를 받아 표기해야 하는데, 표기 위치는 판권면이 아니라 앞표지 왼쪽 위가 원칙이다. 신청도 발행기관 담당 공무원이 직접 하게 되어 있으니, 제작을 맡은 쪽에서는 발주처에 번호를 받았는지 먼저 확인하시라.
형태에 따라 달라지는 판권면
전자책. 종이책과 별도의 ISBN을 받는다. 같은 내용이어도 형태가 다르면 다른 도서다. 전자책은 쪽수가 고정되지 않아 쪽수 표기를 빼는 경우가 많고, 정가도 종이책과 다를 수 있다. 종이책 판권면을 그대로 가져다 쓰면 번호가 어긋나니 꼭 확인하시라.
비매품 기록물. 사사나 백서처럼 팔지 않는 책은 정가 대신 비매품으로 적는다. 비매품이어도 ISBN은 받을 수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비매품을 내는 공공기관과 비영리 법인의 발행자번호 신청 방법도 따로 안내한다.
여기서 오해 하나를 풀고 싶다. ISBN이 없다고 납본을 안 해도 되는 건 아니다. 도서관법 제21조에 따라 누구든 도서관자료를 발행하면 30일 안에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해야 한다. 다만 ISBN이 있으면 서점, 도서관, 인용에서 이 책을 하나의 번호로 찾을 수 있다. 오래 남기려고 만든 책이라면 받아 두시라고 권한다.
한정판·기념판. 발행 부수를 적거나, 몇 부 중 몇 번째인지 표기하기도 한다. 이 경우 일련번호를 어떻게 관리할지 미리 정해 두셔야 한다.
자주 받는 질문
판권면을 앞에 둬도 되나요? 된다. 국내 단행본은 뒤에 두는 경우가 많지만 앞에 두는 책도 있고, 정해진 규칙은 없다.
제작 참여자를 꼭 적어야 하나요? 의무는 아니다. 다만 함께 작업한 사람의 이름을 남기는 게 관행이고, 자서전이나 기록물이라면 나중에 문의할 곳이 되기도 한다.
재쇄를 찍으면 무엇을 고치나요? 쇄 표시를 더한다. 초판 2쇄처럼 적는다. 내용을 고쳤다면 그것도 반영한다.
개정판은 어떻게 적나요? 개정판 1쇄로 적고 초판 발행일도 함께 남기는 경우가 많다. 내용이나 서명, 판형이 바뀐 개정판이라면 ISBN을 새로 받는다.
주소가 바뀌면요? 이미 찍은 책은 고칠 수 없다. 재쇄부터 반영하시고, 서점의 도서 정보는 따로 수정 요청하시라.
미리 말씀드릴 것
판권면의 구성과 표기 방식은 출판사와 책의 성격에 따라 다르고, 법으로 정해진 양식이 있는 건 아니다. 다만 ISBN, 발행일, 정가처럼 다른 데이터와 이어지는 항목은 정확해야 한다. 공공기관 간행물의 발간등록번호처럼 별도 제도가 적용되는 항목은 해당 기관의 안내를 확인하시라.
핵심 정리
판권면에 적힌 정보는 서점과 도서관 데이터, 그리고 인용의 출발점이 된다. 인쇄 뒤에는 고칠 수 없으니 도서명은 표지와, 정가는 뒤표지와, ISBN은 바코드와 하나씩 대조한다. 발행일은 인쇄일이 아니다. 공공기관 간행물의 발간등록번호는 앞표지에 적고, 납본은 ISBN이 없어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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