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 디자인 비용, 쪽수가 전부가 아니다


“두 군데서 견적을 받았는데 내지 비용이 두 배 넘게 차이가 나요. 둘 다 300쪽 기준이라는데요.”
이런 전화를 받으면 나는 먼저 원고에 표가 몇 개 있는지 여쭤본다. 대개 잠깐 말이 없다가 “꽤 많아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그 순간 이유가 거의 보인다. 한 곳은 텍스트만 흘려 넣는 책으로 계산했고, 다른 곳은 원고를 열어 보고 계산했을 가능성이 크다.
견적서에 ’내지 디자인’이 한 줄로만 적혀 있으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실제로는 성격이 다른 작업 여러 개가 섞여 있다.
내지 작업은 네 덩어리다
내지 작업은 네 덩어리로 나뉘고, 장르에 따라 손이 가는 정도가 다르다.
구분 | 무엇을 하는가 | 결과 |
판면 설계 | 판형에 맞춰 여백, 행간, 서체, 글자 크기를 정한다 | 책의 기본 틀 |
조판 | 원고를 그 틀에 흘려 넣고 쪽을 나눈다 | 읽을 수 있는 지면 |
요소 디자인 | 장 표지, 목차, 도판 배치, 표 서식 | 지면의 인상 |
교정 반영 | 수정 사항을 지면에 적용한다 | 확정된 파일 |
가장 중요한데 가장 눈에 안 띄는 게 판면 설계다. 여기서 틀이 잘못 잡히면 책 전체가 읽기 불편해진다. 그런데 완성되기 전에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 만들고 나서야 “왜 이렇게 답답하지” 하게 된다.
값 차이를 크게 만드는 건 요소 디자인이다. 글만 흘려보내면 되는 책과, 장마다 표지가 있고 표와 도판이 들어가는 책은 같은 300쪽이라도 손이 가는 양이 다르다.
무엇이 바꾸나
요인 | 영향 | 물어볼 말 |
쪽수 | 기본 단위. 다만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 몇 쪽 기준 견적인가요 |
요소의 수 | 표, 도판, 각주, 인용의 수량 | 제 원고에 표가 몇 개인지 보셨나요 |
장 구성 | 장 표지와 속표지가 있는가 | 장 표지를 넣으면 얼마가 더 드나요 |
서식 종류 | 본문 외 서식이 몇 가지인가 | 박스, 인용, 사례 서식이 몇 가지인가요 |
수정 횟수 | 교정 반영이 몇 번까지인가 | 몇 교까지 포함인가요 |
원고 상태 | 서식이 뒤섞여 있으면 손이 간다 | 원고를 보고 판단해 주시겠어요 |
앞의 전화처럼 견적이 크게 갈리는 이유는 대부분 둘째 줄, 요소의 수에 있다. 쪽수만 알려 드리면 표준 사양으로 답이 온다. 실제 원고에 표가 많으면 작업 도중에 추가 비용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쪽수와 함께 표 몇 개, 도판 몇 개, 각주 몇 개를 같이 알려 주셔야 한다.
마지막 줄은 저자가 줄일 수 있는 부분이다. 글자 색, 강조, 들여쓰기가 뒤섞인 원고는 조판할 때 그걸 전부 걷어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이 거기서 든다.
견본 조판은 출력해서 보시라
본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몇 쪽을 먼저 짜서 보여 주는 단계가 있다. 이때 볼 것들이다.
한 면의 행 수. 너무 빽빽하거나 허전하지 않은가.
행간. 글자 크기에 비해 줄 사이가 알맞은가.
안쪽 여백. 제본한 뒤 글자가 접히는 쪽으로 말려 들어가지 않겠는가.
서체. 오래 읽어도 눈이 피로하지 않은가.
장 표지. 본문과의 대비가 지나치거나 약하지 않은가.
표와 도판이 들어간 면. 본문과 어울리는가.
안쪽 여백은 꼭 종이로 확인하시라. 화면에서는 멀쩡해 보여도 제본하면 안쪽이 생각보다 좁아진다. 출력해서 두 면을 나란히 놓고, 펼친 책이라고 생각하고 보시면 된다.
견본에 표가 들어간 면도 넣어 달라고 하시라. 본문만 보면 괜찮은데 표가 들어가는 순간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장르에 따라 손이 가는 양이 다르다
장르 | 작업량 | 이유 |
에세이·소설 | 낮음 | 글 위주라 흘려보내면 된다 |
시집 | 중간 | 쪽수는 적어도 편마다 배치를 본다 |
자서전 | 중간~높음 | 사진 배치와 캡션 작업이 붙는다 |
실용서 | 높음 | 표, 도해, 박스가 많다 |
학술서 | 높음 | 각주, 참고문헌, 표가 많다 |
사사·백서 | 매우 높음 | 도표, 연표, 화보가 함께 들어간다 |
사사와 백서는 사실상 편집 디자인에 가깝다. 통계 도표를 새로 그리고, 연표를 설계하고, 화보를 구성한다. 이걸 단행본 단가로 견적 받으면 맞을 수가 없다. 기록물 성격의 책이라면 처음부터 그 조건으로 문의하시라.
자서전도 변수가 크다. 사진이 열 장인 자서전과 백 장인 자서전은 다른 책이다. 오래된 사진의 스캔과 보정이 포함되는지도 확인하시라.
넘기기 전에 원고를 정리하면
저자가 원고를 넘기기 전에 조금만 정리해도 작업량이 줄어든다.
서식을 통일한다. 제목 단계만 구분하고 나머지 꾸밈은 걷어 낸다.
표는 표 기능으로 만든다. 띄어쓰기로 칸을 맞춘 표는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미지는 별도 파일로 보낸다.
이미지 들어갈 자리를 본문에 표시한다.
캡션을 미리 쓴다.
각주 번호를 정리한다.
가장 자주 걸리는 건 둘째와 셋째다. 워드에서 띄어쓰기로 칸을 맞춘 표는 조판 프로그램에서 열면 전부 흐트러진다. 결국 처음부터 다시 만든다. 사진도 문서에 붙여 넣으면 저장할 때 압축되는 경우가 많아서, 인쇄에 쓰기엔 해상도가 모자랄 수 있다. 원본 파일을 따로 보내 주셔야 한다.
캡션은 사소해 보여도 자서전과 사사에서는 중요하다. 사진 속 사람이 누구인지, 언제 찍은 건지는 저자만 안다. 디자이너가 대신 써 드릴 수 없는 부분이다.
견적을 요청할 때 적어 보낼 것
아래를 적어 보내시면 서로 비교할 수 있는 견적이 온다.
원고 분량. 공백 포함 글자 수 또는 예상 쪽수.
판형. 정하지 못했다면 후보 두세 개.
요소 수량. 표, 도판, 사진, 각주의 개수.
장 구성. 몇 개 장인지, 장 표지가 필요한지.
본문 외 서식. 박스, 인용, 사례처럼 다른 서식이 몇 가지인지.
원하는 교정 횟수.
원고 샘플. 서너 장이면 충분하다.
정확도를 가장 크게 높이는 건 마지막 원고 샘플이다. 원고를 보고 낸 견적과 보지 않고 낸 견적은 성격이 다르다.
회신도 항목별로 달라고 하시라. 판면 설계, 조판, 요소 디자인, 교정 반영, 최종 파일 제공이 각각 들어 있는지. 그래야 두 견적을 나란히 놓고 볼 수 있다.
표지와 함께 맡길까
묶어서 맡기면 조정해 주는 곳이 있다. 다만 생각할 점이 몇 가지 있다. 표지와 내지는 작업 성격이 달라 담당자가 다른 경우가 있다. 일정도 다르다. 내지 조판이 끝나야 쪽수가 확정되고, 쪽수가 확정돼야 책등 두께가 나온다. 표지와 내지의 통일감을 원한다면 같은 곳에 맡기는 편이 낫다.
예산을 나눠야 한다면 나는 내지에 무게를 두시라고 말씀드린다. 표지는 처음 한 번 보이지만, 내지는 독자가 마지막 쪽을 덮을 때까지 계속 본다. 읽기 불편한 내지는 책 전체의 인상을 떨어뜨리는데, 그건 화려함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판면 설계가 잘못돼서다. 예산이 빠듯하면 표지 시안 수를 줄이더라도 판면에는 손대지 않으시는 편이 낫다.
나중에 인용될 수 있는 지면
내지 작업은 완성도만의 문제가 아니다. 책이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와도 이어진다. 기록물 성격의 책이라면 더 그렇다. 몇 년 뒤 누군가 이 책에서 자료를 찾아 인용하려 할 때 필요한 것들이 있다.
쪽번호가 정확하다. 인용할 때 쪽수를 적는다.
목차와 본문 쪽수가 맞는다.
표와 도판에 번호와 제목이 붙어 있다.
출처 표기가 일관된다.
연표와 자료편이 찾기 쉬운 자리에 있다.
셋째가 자주 빠진다. 표에 번호가 없으면 “47쪽의 표”라고 쓸 수밖에 없다. 개정판에서 쪽이 밀리면 그 인용은 엉뚱한 곳을 가리키게 된다.
이런 요소가 갖춰져 있어야 책이 자료로 쓰인다. 자료로 쓰이는 책은 다른 문헌에 인용되고, 그렇게 쌓인 인용은 검색이나 생성형 AI 답변이 참고할 근거가 될 여지도 생긴다. 내지 디자인은 읽기 편하게 만드는 일이면서, 이 책이 나중에 인용될 수 있는 모양을 갖추는 일이기도 하다.
자주 받는 질문
직접 조판해도 되나요? 된다. 다만 인쇄용 파일 규격을 맞추는 일이 남는다. 재단 여백, 색상 모드, 서체 처리, 쪽번호 배치에서 사고가 잦다.
쪽수가 늘면 비용도 느나요? 대체로 그렇지만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판면 설계는 한 번이고, 흘려 넣는 작업이 늘어나는 구조다. 다만 요소가 같이 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판한 뒤에 원고를 고치면요? 쪽이 밀려 뒤가 전부 달라질 수 있다. 수정 횟수와 범위를 계약할 때 확인하시라.
최종 파일을 받을 수 있나요? 인쇄용 파일은 꼭 받아 두시라. 재쇄나 개정판 때 필요하다. 원본 편집 파일까지 주는지는 곳마다 다르니 계약할 때 미리 정해 두시라.
시안을 미리 볼 수 있나요? 보통 몇 쪽 분량의 견본 조판을 받는다. 본문, 장 표지, 표가 들어간 면을 함께 보시면 판단하기 쉽다.
미리 말씀드릴 것
이 글은 내지 디자인 비용을 만드는 요인을 정리한 것이고 구체적인 금액은 적지 않았다. 작업 범위와 장르, 요소 수량, 작업자 경력에 따라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견적 항목의 이름도 업체마다 다르니 무엇이 포함되는지 직접 확인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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