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청 백서를 만들며 느낀 것들


산림청 백서를 만들며 느낀 것들
아직 끝나지 않은 사업을 기록한다는 것
오혜교 · 리퍼블릭미디어 대표
월요일 오후 1시, 산림청 회의실에서 백서 착수 회의를 했다. 새만금에 수목원을 짓는 사업의 백서다. 회의는 56분쯤 이어졌다. 테이블 위에는 담당자분들이 참고하라고 꺼내 온 예전 백서 몇 권이 놓여 있었다. 그중 한 권을 가리키며 담당자 한 분이 말씀하셨다. “이게 그나마 최신이에요. 5년 된 거.”
공공기관 백서 회의는 여러 번 해 봤다. 그런데 이번 회의는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회의 끝 무렵 한 분이 “저희가 자체적으로 백서를 하는 게 처음이라서 그래요”라고 하셨다.
시간이 없을수록 인터뷰 날짜부터
과업지시서에 적힌 납기는 12월 21일이었다. 넉넉하지 않다. 그래서 회의는 일정 이야기로 시작했다.
인터뷰 대상자는 두 갈래였다. 산림청 안에 계신 분들, 그리고 새만금 현장 쪽에 계신 분들. 담당자분은 연락처를 줄 테니 직접 연락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경험상 외부 업체가 직접 전화해서 날을 잡으면 생각보다 잘 안 잡힌다. 계장님이나 주무관님이 미리 한마디 해 두고 좋은 날을 몇 개 골라 주시는 게 훨씬 빠르다. 지역별로 하루씩, 그날 몰아서 하는 게 제일 좋다.
사소해 보여도 이게 일정 전체를 좌우한다. 인터뷰 하나가 2주 밀리면 원고가 2주 밀린다.
과업지시서만 보고는 알 수 없는 것
과업지시서에는 인터뷰 비중이 꽤 크게 적혀 있었다. 그래서 여쭤봤다. 인터뷰 대상이 네 분이라면 나머지 15개 항목은 자료로 다 대신할 수 있는지, 항목마다 육성을 담을 실무자나 이해관계자가 따로 있는지.
답은 분명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하셨다. 자료는 지금까지 정리된 게 있고, 인터뷰로 자료를 끌어내기는 어렵다고. 예전 다른 수목원 백서처럼 사업 과정을 쭉 적고, 마지막에 공사를 마무리하는 분들의 회고 인터뷰를 싣는 정도로 생각하셨다고 했다. 10년 전 일을 물으려면 10년 전 사람을 찾아가야 하는데, 한 업무에 거친 사람만 해도 여럿이다.
물어보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과업지시서는 큰 그림만 적혀 있다. 그 안에서 기관이 실제로 원하는 그림은 직접 물어야 나온다.
자료 목록은 목차가 아니다
주무관님이 미리 보내 주신 15개 분류가 있었다. 그런데 회의 중에 주무관님이 먼저 말씀하셨다. 이건 백서를 만들기 위한 목록이라기보다 자료를 모으기 위한 목록이었던 것 같다고. 다른 수목원 백서는 수목원 일반 현황, 첫 삽을 뜨는 이야기로 시작하는데 우리 목록은 기본 구상 계획 수립부터 시작한다고. 수정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다.
정확한 지적이다. 자료 목록과 목차는 하는 일이 다르다. 그래서 우리는 받은 자료를 연표로 세우고 자료별로 폴더를 정리하는 일부터 한다. 그걸 바탕으로 가목차를 두세 가지 안으로 나눠 드린다. 내부에서 검토하시고 A안이 낫다고 하면 그걸로 세부 목차를 짜고, 구성안을 짠다. 순서를 건너뛰면 나중에 뒤집게 된다.
자료는 다 받는다. 고르는 건 그다음이다.
자료는 정리되지 않은 그대로 다 받는다
그러려면 자료가 있어야 한다. 처음 받은 파일은 네다섯 개였다. 10년 치 사업이고,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공문까지 포함해서 다 달라고 말씀드렸다.
문제는 어떻게 받느냐였다. 용량이 몇십 기가쯤이고, 기관 내부망에서 외부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보안 USB는 밖에서 안 풀릴 수도 있다. 결국 메일로 최대한 보내 보고, 안 되면 쪼개서 보내 주시기로 했다. 수작업이 되든 뭐가 되든 일단 양이 있어야 거기서 끄집어낼 수 있다. 정리는 우리가 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 몇 개보다, 정리 안 된 자료 전부가 훨씬 낫다.
누구를 위한 기록인가
회의에서 가장 중요했던 대목은 이거였다. 시공사에서 이미 건설지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거기에 기관의 뜻을 담으려 했더니 성격이 너무 달랐다고. 건설지는 설계 도면을 붙이고 이런 공법을 썼다는 식으로 간다. 기관이 원하는 건 그게 아니었다.
“저희 뒤에 오시는 분들이, 우리 걸 보고 ‘이렇게 했었구나,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할 수 있는 기록이요.”
사업성을 내세우거나 특정 메시지를 앞세울 백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담백하게 가는 게 맞다. 그런데 바로 다른 분이 덧붙이셨다. 새만금이라는 땅 자체, 간척지의 기반 시설 이야기는 스토리텔링 없이는 안 될 것 같다고.
둘 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장을 나누기로 했다. 정확한 절차를 밀도 있게 담아야 하는 장은 절차대로 간다. 이 사업이 왜 시작됐는지, 어떤 어려움을 지나왔는지는 스토리텔링 장으로 따로 둔다. 담백하게만 가면 자료를 날짜순으로 정렬한 것밖에 안 된다. 이야기만 넣으면 후임자에게 필요한 절차가 묻힌다. 섞되, 어디서 섞을지는 장 단위로 정해 두는 게 좋다.
글이 많은 백서를 읽히게 하는 법
요즘 유행이 어떠냐는 질문도 받았다. 요즘은 백서라도 텍스트가 많은 걸 원하지 않는 추세다. 가독성이 떨어진다고들 한다. 그런데 이 과업은 성격상 글이 적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관건은 두 가지다. 갖고 있는 자료 가운데 얼마만큼 추려 내느냐, 그리고 남은 글을 얼마나 보기 편하게 편집하느냐.
판형 이야기도 여기서 나왔다. 산림청 백서는 그동안 책꽂이에 쏙 들어가는 작은 판형을 많이 썼다고 했다. 작은 판형은 글줄 중심이 된다. 큰 판형은 표와 그래프, 사진을 시원하게 앉히기가 훨씬 수월하다. 나중에 몇 권을 양장으로 만들 때도 보기 좋다. 글이 많은 백서일수록 판형이 숨 쉴 자리를 만들어 준다.
끝나지 않은 사업을 기록하는 법
이번 백서의 가장 큰 특징은 사업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준공은 내년이다. 진짜 변화는 준공 이후에 생긴다. 그런데 납기는 올해 12월이다.
그래서 기준점을 정했다. 12월 10일까지의 자료, 그때까지 나온 기성까지를 기준으로 토대를 만든다. 나머지는 내년에 이어서 얹는다. 처음부터 다시 뒤집는 게 아니라 뒤에 더하는 방식이다. 기관도 다 뒤집는 건 부담스럽다고 하셨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마무리 장을 100쪽 비워 둘 수는 없으니, 올해는 거기까지 정리한 것으로 일단 매듭짓는다.
인쇄는 10부쯤 먼저 뽑기로 했다. 어느 정도 나온 책을 손에 들고 봐야 더 세밀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판단이다. 나는 이게 아주 현명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 기준일에서 거꾸로 계산한 일정표를 드리기로 했다. 언제까지 자료를 모으고 언제 검토하실지 기관이 미리 알고 계셔야 하니까.
사진은 문서에서 오려 쓰지 않는다
사진도 짚어 둘 게 있었다. 예전 백서를 보면 문서에 붙어 있던 사진을 그대로 오려서 쓴 경우가 많다. 그러면 해상도가 낮아지는 걸 감수해야 한다. 펼친 면에 크게 들어가야 하거나 꼭 선명해야 하는 사진은 원본을 따로 받아야 한다. 어떤 사진이 그런지는 원고를 쓰면서 우리가 따로 요청드리기로 했다.
회의 막바지에 한 분이 자료 속 그림 하나를 가리키셨다. 구조물의 뼈대만 서 있는 그림이었다. “저게 표지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시작했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원본은 다 있다고 했다. 요즘 가을 석양이 진짜 예쁘다는 이야기, 봄에는 아무리 잘 찍어도 날씨가 안 따라 준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처음 하는 기관과 일한다는 것
제목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수목원 조성 이야기, 너무 재미없다”는 말에 다들 웃었다. 보통은 이럴 때 본제는 담백하게 두고 부제로 숨을 불어넣는다. 연도를 넣을지도 내용을 다 보고 정하기로 했다. 소통은 메일로 자료를 주고받고, 결정이 필요할 때는 계장님까지 들어오시는 단톡방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처음 백서를 만드는 기관은 무엇을 물어야 할지부터 막막하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일은 정답을 내놓는 게 아니라 순서를 보여 드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일정은 어디서 거꾸로 잡는지, 자료는 어떻게 받는지, 목차는 언제 짜는지. 그 순서가 보이면 기관도 자기 사업을 어떻게 남기고 싶은지 말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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