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만든 자료,기업 백서에 쓸 수 있을까?


AI로 만든 자료,
기업 백서에 쓸 수 있을까?
화면에서 괜찮던 이미지가 인쇄물에서는 왜 달라 보일까?
오혜교 · 리퍼블릭미디어 대표
오후 1시 40분쯤, 한 금융회사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메일은 이미 두어 번 주고받은 사이였다. 설명은 잘 이해했는데, 이번 주에 업체를 정해야 해서 마지막으로 몇 가지만 직접 묻고 싶다고 했다.
첫 질문이 표지였다. 담당자 쪽에서 빙하처럼 생긴 이미지를 GPT로 하나 만들어 봤는데 생각보다 괜찮더라는 것이다. 해상도는 낮지만, 실제로 작업하면 이 느낌이 어느 정도까지 나오느냐고 물었다.
요즘 백서 상담을 하면 이런 질문을 정말 자주 받는다. 실무자가 직접 AI로 표지 시안을 돌려 오고, 내지 구성도 AI로 짜서 가져온다. 그래서 그날 통화에서 나눈 이야기를 조금 길게 적어 둔다. AI로 만든 자료, 백서에 써도 될까.
똑같이 하려면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먼저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비슷하게는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싱크로율 100%로 똑같이 맞추고 싶다면, 주신 이미지를 그대로 스케일업하는 방법밖에 없다. 실제로 출판 쪽에서는 그렇게 해서 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 경우 비용은 따로 들지 않는다.
담당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그 느낌이 나도록 새로 만들면 비용이 더 드느냐고. 디자이너가 그 이미지를 보고 손으로 다시 그리거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똑같이 옮기는 건 공수가 많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다고 말씀드렸다. AI가 이미 그려 놓은 걸 사람이 다시 따라 그리는 셈이니까.
화면에서 좋던 것이 종이에서는 다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백서는 지금 모니터로 보시는 것과 나중에 인쇄본으로 받아 보시는 게 상당히 다르다. 조잡해 보일 수 있다고 했더니, 담당자가 해상도가 깨져서 그런 거냐고 물었다.
해상도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선 요즘은 실무자들이 AI를 워낙 많이 돌리다 보니, 누가 봐도 “AI로 만들었구나” 하는 느낌이 난다. 그리고 인쇄물은 잉크가 종이에 올라가는 물건이다. 화면에서 빛으로 봤을 때 예뻐 보이는 것과 종이에서 예뻐 보이는 건 기준이 다르다. 그대로 쓰면 AI로 만든 그림을 프린트해서 표지에 오려 붙인 것 같은 느낌이 날 수 있다.
담당자는 그 말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 이미지를 A4로 늘려서 직접 출력해 봤는데, 아주 깔끔하진 않아도 이질감은 크게 없더라고. 그래도 인쇄하면 또 다르냐고.
다르다. 사무실 프린터로 뽑은 A4 한 장과 백서 한 권은 같은 물건이 아니다. 책에는 제목과 본문의 폰트 크기가 있고, 조판의 조화라는 게 있다. 이미지 하나만 놓고 보면 괜찮던 것도, 글자와 여백과 다른 페이지 사이에 들어가면 붕 떠 보인다. 대행사들이 AI 이미지를 참고 자료로는 받아도 그대로 앉히지 않는 이유가 이거다.
물론 최종 판단은 회사가 한다. 내부에서 그걸로 만족하시면 그대로 가는 거다. 다만 결정하기 전에 그 차이는 알고 계셔야 한다고 말씀드렸다.
이미지는 살려도 글자는 다시 잡아야 한다
그래서 내가 권하는 건 이렇다. AI 이미지에서 제일 먼저 손봐야 할 건 그림이 아니라 폰트다. 이미지는 그대로 살린다 해도 그 위의 글자는 다시 잡아야 한다. AI가 넣어 준 제목 글씨는 대개 모양만 그럴듯하고, 기업의 서체나 책 전체의 글자 체계와 맞지 않는다. 표지 제목 한 줄을 제대로 다시 앉히는 것만으로도 인상이 꽤 달라진다.
같은 페이지가 반복돼도 견적은 줄지 않는다
내지 이야기로 넘어갔다. 담당자 말로는, 보통 다른 회사 백서를 보면 사진이 오른쪽으로 갔다가 글씨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면서 편집 요소가 많은데 자기네는 다르다고 했다. 대표 사례를 하나 보냈는데, 그런 사례가 30~40개쯤 되고 그게 분량 대부분을 차지한다. 간지나 목차를 빼면 거의 같은 틀이 반복되니 다른 회사보다 손이 덜 가지 않겠느냐, 그게 견적에 반영됐느냐는 질문이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 요소가 몇 가지냐의 문제는 아니다. 같은 틀이 반복되더라도 디자인은 결국 우리가 페이지마다 손으로 하는 일이다. 반복된다고 전체 견적이 줄지는 않는다.
같은 틀이 반복되는 사례 페이지도 결국 한 장씩 손으로 앉힌다.
대신 일을 정말 단순하게 가고 싶다면 질문을 바꾸시라고 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산은 이 범위다. 그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디자인은 어디까지냐.” 이렇게 물으시는 게 낫다. 주신 선호 디자인과 내지 참고 시안대로만 나오면 된다고 하시면 그대로 디자인해서 드릴 수 있고, 그러면 공수가 준다. 다른 패턴은 원하지 않는다고 정해 주셔도 줄일 수 있다.
다만 하나는 미리 말씀드렸다. 주신 시안도 실제로 조판해 보면 느낌이 많이 다를 거라고. “그냥 이대로 똑같이 하면 되잖아” 하고 시작했다가, 나중에 받아 보고 “우린 이걸로 만족해”가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담당자는 본문 상단에 진척도 표시, 옆에 인덱스, 안쪽은 칸을 나눠서 번호 정도만 강조하는 수준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그 정도로 기준이 분명하면 이야기가 훨씬 쉬워진다.
일정은 기한에서 거꾸로 잡는다
마지막은 일정이었다. 작업하면 완성본 PDF를 언제쯤 받을 수 있느냐고.
사실 우리가 가능한 일정을 먼저 제시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정석대로 하면 백서는 3~4개월을 잡고 간다. 그런데 그렇게 진행하는 회사는 거의 없다. 대부분 언제까지 책이 납품돼야 한다, 언제까지 디자인 완료본이 나와야 한다는 기한이 이미 있다. 우리는 그 날짜에서 거꾸로 계산해서, 그 기한과 예산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디자인의 범위를 현실적으로 제안한다.
담당자는 혹시 다른 일 때문에 밀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 일은 없다고 답했다. 예산과 착수 시점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뒤, 담당자는 내부에서 상의하고 다시 연락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그래서, 쓸 수 있을까
쓸 수 있다. AI로 만든 표지 시안은 우리가 원하는 분위기를 디자이너에게 전하는 데 꽤 좋은 자료다. 말로 “차갑고 깨끗한 느낌”이라고 하는 것보다 그림 한 장이 훨씬 빠르다.
다만 그걸 완성본으로 쓸지는 따로 생각해야 한다. 화면이 아니라 종이에서 어떻게 보일지, 폰트는 누가 다시 잡을지, 시안대로 가면 나중에 만족할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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