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백서,제작 미팅에서부터 결론은 정해져 있다


글 오혜교 리퍼블릭미디어 대표
공공기관 백서 작업에서 첫 미팅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결정한다. 서로 머릿속에 그린 그림이 다르면, 그 차이는 원고와 디자인이 나온 뒤에야 수정 요청으로 돌아온다. ‘미팅에서부터 결론은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처음에 무엇을 합의했느냐가 결과물의 완성도는 물론 작업 전체의 흐름까지 좌우한다.
얼마 전 한 백서의 과업지시서를 살피다가 ‘아카이빙’이라는 항목을 들여다보았다. 받은 자료를 책 안에 정리하면 되는 일인지, 아니면 관련 기관에 협조를 구해 기록물을 직접 모으고 별도 자료로까지 남겨야 하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같은 단어를 놓고도 각자 떠올리는 일의 크기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이런 차이를 ‘나중에 맞추면 되겠지’ 하고 넘기면 대개 일정과 비용 문제로 번진다.
그래서 담당자에게 이 항목이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카이빙’이라는 말 한마디로 과업을 짐작할 수는 없다. 어떤 자료를 어디까지 모을지, 그 자료는 누가 확보할지, 마지막에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지까지 구체적으로 맞춰야 한다. ‘자료를 정리한다’는 말에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고 해서 같은 일을 떠올렸다는 보장은 없다.
다음으로 살핀 것은 소통 구조였다. 자료를 보내준 분이 기획에 대한 판단까지 내릴 수 있는지 물었더니, 본인은 연락 창구를 맡고 있고 결정은 다른 분이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흔한 일이다. 다만 자료를 전달하는 사람과 방향을 승인하는 사람은 분명히 구분해 두어야 한다. 의견이 누구를 거쳐 올라가고 최종 확인은 어느 단계에서 받는지 알아야 검토 일정도 현실적으로 잡을 수 있다.
결정권자가 이 책으로 무엇을 남기고 싶어 하는지도 놓쳐서는 안 된다. 사업이 걸어온 과정을 차곡차곡 기록하고 싶은지, 성과와 그 의미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싶은지에 따라 구성의 무게중심이 달라진다. 제작자는 기관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 목적을 뒷받침할 자료와 표현을 찾아 제안해야 한다. 물론 원하는 메시지가 있다고 해서 사실을 거기에 끼워 맞출 수는 없다.
그렇다고 첫 미팅에서 질문만 쏟아낸다고 원하는 답이 다 나오지는 않는다. 기관은 제작자의 제안을 보고 방향을 정하는 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발주처가 구성을 이미 다 정해두었으리라 기대하고 들어가면 회의는 제자리를 맴돌기 쉽다. 반대로 배경을 충분히 모르는 상태에서 정식 기획안부터 완성해 가면, 공들인 작업을 크게 뒤집어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미팅 전에 과업지시서와 기초자료를 먼저 검토하고, 논의할 방향을 정리해서 가자고 제안했다. 확정된 기획안이 아니라 함께 고민해볼 초안이다. 지금 있는 자료로 가능한 구성과 더 확인해야 할 부분을 보여주면 담당자도 훨씬 구체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발간 목적과 과업 범위, 자료 확보 방법을 조율하고, 그다음에 정식 기획안으로 발전시키면 된다.
첫 미팅이 끝나면 합의한 내용과 아직 남은 질문을 반드시 문서로 정리해 둔다. 자료는 누가 언제까지 넘겨줄지, 기획안은 누가 검토할지, 추가로 확인할 과업은 무엇인지 하나하나 적어두는 것이다. ‘회의 분위기가 좋았다’는 기억만으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공공기관 백서를 만드는 데는 글을 잘 쓰고 지면을 보기 좋게 꾸미는 능력만 필요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모두가 같은 일을 바라보게 만드는 능력도 그만큼 중요하다. 첫 미팅에서 정리한 몇 가지가 결국 책 한 권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게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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