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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원고를 자비출판사에 맡겼더니..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5월 14일
  • 3분 분량

50대 직장인 L씨는 퇴직을 앞두고 30년간 써온 일기를 에세이로 엮어 책을 내고 싶었다. 원고는 A4 180장 분량이었다. 기획출판사 3곳에 투고했지만 모두 무응답이었다. 결국 자비출판을 결심하고 출판사를 찾기 시작했다. 이후 3개월간의 과정을 따라가 본다.

출판사 선정에 2주가 걸렸다. 네이버에서 자비출판사를 검색하면 수십 곳이 나온다. L씨는 5곳에 견적을 요청했다. 금액은 350만 원부터 900만 원까지 편차가 컸다. 가장 저렴한 곳은 편집 없이 인쇄만 해주는 구조였고, 가장 비싼 곳은 윤문과 사진 편집까지 포함된 풀 패키지였다. L씨가 선택한 곳은 중간 가격대(600만 원)의 출판사였다. 결정적 기준은 두 가지였다. 편집자와 직접 전화 상담이 가능했다는 것, 그리고 해당 출판사에서 나온 기존 에세이의 표지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는 것.

첫 미팅에서 편집자가 원고를 훑어보고 솔직한 의견을 줬다. 일기체 문장이 너무 많아 독자가 읽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180장 중 130장 정도가 살릴 수 있는 분량이고, 나머지는 중복이거나 개인적 메모에 가까웠다. L씨는 처음에 기분이 상했지만, 편집자의 제안에 따라 30개 에피소드를 추려 재구성하기로 했다. 이 기획 과정에 1주가 소요됐다.

교정교열과 윤문은 가장 긴 단계였다. 3주가 걸렸다. 편집자가 문장을 다듬고 불필요한 수식어를 삭제하고 시간 순서를 정리했다. L씨가 쓴 원문의 톤은 유지하되 가독성을 높이는 방향이었다. 편집자가 수정한 원고를 L씨가 확인하고, 동의하지 않는 부분을 되돌리는 과정을 2차에 걸쳐 반복했다. 이 과정에서 L씨가 놀란 것은 자기가 쓴 문장 중 상당수가 주어-서술어 호응이 맞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30년간 일기를 쓰면서 문법을 의식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디자인 단계에서는 표지 시안 3개가 나왔다. L씨는 가장 심플한 시안을 골랐다. 내지 디자인은 에세이에 맞는 넉넉한 여백과 따뜻한 톤의 레이아웃으로 잡았다. 장(章) 시작 페이지마다 L씨가 직접 찍은 사진 1장을 배치하기로 했다. 사진 30장 중 인쇄 품질을 충족하는 것은 18장뿐이었다. 나머지 12장은 해상도가 낮아 교체해야 했다. 디자인 확정까지 2주.

인쇄는 200부를 주문했다. 흑백 본문에 컬러 표지, 무선제본. 인쇄비 90만 원이었다. 인쇄에 10일, 배송에 2일. 택배로 도착한 박스를 열었을 때 L씨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첫 페이지를 펼쳐 자기 이름을 확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총비용은 편집 교정교열 180만 원, 표지+내지 디자인 200만 원, 인쇄 200부 90만 원, ISBN 등록+서점 유통 30만 원, 사진 편집 20만 원. 합계 520만 원. 초기 견적(600만 원)보다 줄어든 것은 사진 편집 분량이 예상보다 적었기 때문이다. 서점 입점 후 첫 달 판매량은 12부였다. L씨는 나머지 188부 중 100부를 지인에게 나눠주고, 88부는 집에 보관하고 있다.

에세이 자비출판의 현실적인 판매 기대치도 알아둬야 한다. 무명 저자의 에세이는 월 5~15부 판매가 일반적이다. 연간 100부를 팔면 선전한 편이다. 판매 수익으로 제작비를 회수하겠다는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자비출판의 가치는 수익이 아니라 기록에 있다. 나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해서 가족과 지인에게 건넬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이다.

서점 입점 후 L씨가 가장 뿌듯했던 순간은 교보문고에서 자기 이름을 검색했을 때 책이 나온 것이었다. 검색 결과에 본인의 책이 뜬다는 것은 단순한 인쇄물이 아니라 공식적인 출판물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ISBN이 부여되고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되면 이 책은 영구적으로 보존된다. 자비출판이라도 이 과정은 기획출판과 동일하다.

L씨가 전 과정을 돌아보며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편집자가 처음에 원고 절반을 들어내라고 했을 때 화가 났는데, 완성된 책을 보니까 그게 맞는 판단이었다. 내 일기를 남에게 읽히려면 내가 아는 맥락을 빼고 써야 한다는 걸 몰랐다." 자비출판의 가치는 책이 팔리는 데 있지 않다. 흩어져 있던 기억을 한 권의 형태로 정리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건넬 수 있게 되는 데 있다.

출간 후 L씨가 가장 아쉬워한 것은 사진 준비를 더 일찍 하지 못한 것이다. 에세이에 들어갈 사진을 편집 단계에서 급하게 찾다 보니 원하는 사진이 해상도 부족으로 탈락하고 차선책을 쓸 수밖에 없었다. 사진이 들어가는 책이라면 원고 작성 단계부터 사진을 함께 정리하는 것이 좋다. 고해상도 원본을 폴더별로 정리해두면 디자인 단계에서 시간을 크게 절약할 수 있다.

비용 절감 팁도 있었다. L씨는 처음에 300부를 찍으려 했지만 편집자의 조언에 따라 200부로 줄였다. 200부와 300부의 인쇄비 차이가 40만 원이었는데 실제로 200부도 절반 이상 남았다. 남은 책의 보관이 물리적으로 부담이 되므로 판매 채널이 명확하지 않다면 소량으로 시작하고 소진 후 POD로 전환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전 과정에서 가장 시간이 걸린 것은 저자 검토 단계였다. 편집자가 수정한 원고를 L씨가 확인하는 데 매번 1주일씩 걸렸다. 바쁜 직장 생활과 병행하다 보니 원고를 읽을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출판 일정을 앞당기고 싶다면 원고 검토 기간을 미리 확보해두는 것이 핵심이다. 주말 하루를 원고 검토일로 비워두는 것만으로도 전체 일정이 1~2주 빨라진다.

자비출판사를 고를 때 가격만 보지 말고 편집자와 직접 통화해볼 것을 권한다. 5분 통화에서 느껴지는 편집자의 관심도와 전문성이 이후 3개월간의 작업 만족도를 좌우한다. 전화 한 통이면 그 출판사가 저자의 원고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그냥 인쇄비를 받으려는 것인지 구분할 수 있다. 리퍼블릭미디어에서는 초기 상담 단계에서 원고를 직접 읽고 편집 방향 제안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와 편집자의 호흡이 맞는지 사전에 확인할 수 있다. 자비출판은 결국 저자와 편집자의 협업이다. 좋은 파트너를 만나면 원고 이상의 책이 나오고, 잘못 만나면 원고만도 못한 결과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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