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필작가가 말하는 자기계발서 대필의 진실
- 리퍼블릭 편집부
- 17시간 전
- 4분 분량

현직 대필작가가 말하는 자기계발서 대필의 진실
"선생님, 제가 쓴 건 아니에요."
작년 봄, 한 대기업 임원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의 베스트셀러 자기계발서가 표절 논란에 휩싸였을 때였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6개월 동안 밤낮으로 매달려 써준 책이었으니까.
대필작가로 10년째 살고 있다. 내 이름이 표지에 박힌 책은 단 한 권도 없지만,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내가 쓴 책들이 즐비하다. 오늘은 그동안 침묵해왔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자기계발서를 쓰고 싶어하는 당신이 어떤 대필작가를 만나야 하는지 말이다.
1장: 대필작가의 숨겨진 세계
떠오르는 신예형 - "나도 성공하고 싶어요"
가장 많이 만나는 유형이다. 보통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문학 전공이나 언론학과 출신이 많다. 이들의 특징? 열정만큼은 넘친다.
"선생님, 저 정말 글 잘 써요. 대학 때 백일장에서 상도 탔어요!"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자기계발서는 문학이 아니다. 독자가 돈을 내고 사는 건 감동이 아니라 솔루션이다. 이 친구들한테 자기계발서를 맡기면? 글은 예쁘게 나온다. 문제는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몇 년 전, 한 스타트업 대표가 창업 이야기를 책으로 내고 싶다며 이런 신예 작가를 소개받았다. 결과물을 보니 마치 소설 같았다. "그날, 나는 운명적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식으로 시작하는 문장들. 독자는 구체적인 창업 노하우를 원했는데, 받은 건 감상적인 회고록이었다.
실용주의자형 - "팔리는 책을 만들어드려요"
이들은 다르다. 보통 5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들이다. 출간된 책의 판매 부수를 외우고 다니고, 어떤 키워드가 검색량이 높은지 꿰고 있다.
"요즘 'MBTI'랑 '부동산' 키워드가 핫해요. 둘 다 넣어서 '성격 유형별 부동산 투자법' 어떠세요?"
솔직히 말하면, 자기계발서 시장에서 가장 성공 확률이 높은 건 이런 작가들과 작업하는 거다. 이들은 독자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안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실용적인 정보 전달에 능하다.
작년에 한 유튜버가 "구독자 100만 달성법"이라는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실용주의자형 작가와 매칭해줬더니, 책 구성부터 남달랐다. 1장부터 바로 "첫 영상 조회수 1000회 만들기"로 시작했다. 철학적인 얘기는 뒤로 미루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팁부터 던져준 거다. 결과? 3개월 만에 2쇄를 찍었다.
학구파형 - "근거 있는 글을 써드려요"
대학원 출신이 많다. 심리학, 경영학, 사회학 전공자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무기는 탄탄한 이론적 배경이다.
"이 부분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논문을 인용하면 어떨까요? 최근 5년간 성과관리 연구 동향을 보면..."
문제는 때로 너무 무거워진다는 거다. 독자는 쉽게 읽고 싶어하는데, 이들은 정확하게 쓰고 싶어한다. 균형을 맞추는 게 관건이다.
최근에 한 교수가 "행복 심리학" 책을 의뢰했다. 학구파 작가와 매칭했더니, 초고가 거의 논문 수준이었다. "세로토닌 분비 메커니즘이 주관적 웰빙 지수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식으로 시작하는 문장들. 3번의 퇴고를 거쳐 겨우 일반 독자가 읽을 만한 수준으로 만들었다.
경험담 전문가형 - "제가 직접 해봤어요"
가장 드물지만 가장 강력한 유형이다. 해당 분야에서 실제로 성공한 경험이 있는 작가들이다. 투자로 돈을 번 작가, 창업에 성공한 작가, 다이어트로 30kg를 뺀 작가.
"제가 실제로 3년 전에 똑같은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이런 방법을 써봤는데..."
이들의 글에는 생생함이 있다. 이론이 아니라 체험담이니까. 독자들도 더 신뢰한다. "이 사람 말이 맞네"라는 생각이 들거든.
단점은 객관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거다. 자신의 경험에만 의존하다 보니 다른 관점을 놓치기 쉽다. 그리고 가격이 비싸다. 경험값이 있으니까 당연하다.
2장: 자기계발서별 최적 매칭법
비즈니스/창업서
추천: 실용주의자형 + 경험담 전문가형
창업서는 실전성이 생명이다. 이론보다는 "실제로 어떻게 했는지"가 중요하다. 실용주의자형이 시장성을 책임지고, 경험담 전문가형이 진정성을 채워준다.
자기관리/습관서
추천: 학구파형 + 실용주의자형
습관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설득력이 생긴다. 하지만 너무 어려우면 안 되니까 실용주의자형의 대중적 감각이 필요하다.
인간관계/소통서
추천: 경험담 전문가형 단독 또는 + 떠오르는 신예형
인간관계는 감정적인 영역이다. 딱딱한 이론보다는 공감할 수 있는 사례가 중요하다. 신예형의 감성적 표현력이 도움이 된다.
재테크/투자서
추천: 경험담 전문가형 필수
투자는 결과가 명확한 영역이다. 실제로 돈을 벌었는지가 중요하다. 이론만 아는 작가한테 맡겼다가는 독자들한테 욕먹기 딱 좋다.
3장: 대필작가 선택의 함정들
함정 1: 포트폴리오의 착각
"이 작가 베스트셀러를 여러 권 썼네요!"
잠깐, 그 베스트셀러가 정말 그 작가 덕분일까? 자기계발서 시장에서는 저자의 명성이 판매량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무명 작가가 쓴 똑같은 내용이라도 유명인이 저자로 나서면 10배는 더 팔린다.
포트폴리오를 볼 때는 판매량보다는 내용의 퀄리티를 봐야 한다. 그리고 해당 작가가 당신의 분야에 얼마나 적합한지를 따져봐야 한다.
함정 2: 싼 게 비지떡
"저희는 1000만원에 해드려요. 다른 곳은 3000만원이라고 하던데..."
경험상, 대필 시장에서 가격과 품질은 거의 비례한다. 물론 신예 작가 중에도 실력자가 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보면 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특히 자기계발서는 저자의 브랜딩과 직결된다. 책 한 권으로 강연료가 10배 뛰는 경우도 있다. 단기적 비용 절약 때문에 장기적 손해를 보는 우를 범하지 말자.
함정 3: 케미의 중요성
아무리 실력 있는 작가라도 저자와 안 맞으면 좋은 책이 나올 수 없다. 내가 봐온 실패 사례 중 상당수가 여기서 비롯됐다.
기업 CEO가 리더십 책을 쓰려고 했는데, 배정받은 작가가 20대 신예였다. 나이 차이가 30살이나 났다. CEO는 "이 친구가 리더십을 뭘 알겠어"라며 처음부터 불신했다. 결국 프로젝트는 엎어졌다.
4장: 뼈 때리는 조언 - 대필작가와 일하는 법
첫 미팅에서 이것만은 확인하자
해당 분야 경험: "이런 주제로 몇 권 써봤어요?"
작업 방식: "보통 몇 번 미팅하고 어떤 식으로 진행해요?"
수정 범위: "퇴고는 몇 번까지 가능해요?"
일정: "원고 완성까지 얼마나 걸려요?"
좋은 대필작가의 신호
질문을 많이 한다 (당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깊이 파려고 한다)
독자를 먼저 생각한다 ("누가 이 책을 읽을까요?")
현실적인 일정을 제시한다 (무리한 단축 일정을 받지 않는다)
참고서적을 추천한다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있다)
위험한 대필작가의 신호
만나자마자 계약서부터 꺼낸다.
"다 알아서 해드려요"라며 구체적 질문을 회피한다
비현실적으로 빠른 작업을 약속한다
수정을 꺼린다 ("한 번에 완벽하게 써드려요")
10년간 대필작가로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 좋은 책은 저자와 작가가 함께 만드는 거라는 것이다. 작가는 글쓰기 기술을 제공하고, 저자는 경험과 통찰을 제공한다. 둘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좋은 책이 나올 수 없다.
자기계발서를 쓰려는 당신에게 마지막 조언 하나만 더하자면, 대필작가를 고용하는 것이 글쓰기를 완전히 위임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당신의 경험과 철학이 책의 핵심이다. 작가는 그것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포장해주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니까 완벽한 대필작가를 찾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신과 함께 좋은 책을 만들어갈 파트너를 찾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접근하길 바란다. 그림자 속에서 글을 쓰는 우리들도, 결국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 싶어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책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한 권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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