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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작가가 챗지피티보다 못할까?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2일 전
  • 2분 분량


가끔 인터뷰를 하면서 생각한다. 내가 챗지피보다 나은 점은 무엇일까? 지치지도 않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고 늘 섬김의 자세로 거의 모든 질문에 답해주는 챗지피티와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꽤 있다. 나에게는 거의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챗지피티랑 대화한 내용을 책으로 내고 싶다는 전화가 걸려온다. 예전에는 질문해주고 적절한 답을 끌어내주는 ‘기자’라는 직업이 중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PR 목적의 기사를 내기 위해 기자를 사서 불러들이는 명사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은 고개가 늘 15도쯤 하늘로 들어 올려져 있는 직업, 인터뷰이는 질문을 선택할 수 없고 오로지 주어진 질문에만 답해야 한다. 늘 그렇듯 권력은 질문하는 사람 쪽에 있다, 답하는 쪽이 아니라...

챗지피티가 모든 걸 바꿔... 아니, 망쳐놓았다고 해야 할까. 개떡 같은 질문에도 찰떡 같이 대답하면서도 더없이 친절한 이 기계는 조만간 상담가와 기자와 컨설턴트의 직업을 대체할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챗지피티가 잘 못하는 게 딱 하나 있는데, 그것은 답변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대신 찾아주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게 분명하다면, 챗지피티는 내가 묻는 바에 대해 정확히 답을 하고 조언도 해주지만, 내가 원하는 게 분명치 않을 때는 챗지피티의 대답도 겉돈다. 그럴 수밖에. 인간을 아무리 그럴싸하게 흉내내더라도 마음과 감정이 없는 이 기계는 욕망을 찾아주는 데는 아직까지 한계가 있다(아직까지는 그렇다는 얘기다. 미래에는 또 모르겠지만).

책 출판을 위해 상담을 오는 사람들 중에는 거의 대부분이, 자기가 무엇을 책으로 내고 싶어하는 지를 잘 모른다. 법적 공방을 해야 하는 사람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와서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명확히 말한다. 원하는 게 분명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가 명확하기에 그렇다. 반면 책 출판은 어떤 면에서는 추상적이고 다소 철학적인 부분이 끼어드는 문제라, 딱 부러진 정답이 없는 세계이다. 비유하자면 집에서 그럴싸한 야구방망이를 깎아와서 내밀어도, 이쪽에서 “골프를 치셔야겠네요”라고 조언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식이다. 그나마 원하는 게 뚜렷한 사람들에게는 골프를 권하면 곧바로 방망이를 내려놓지만 자기가 어떤 게임을 하기 원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좀 더 복잡한 스무고개를 해야 한다.

챗지피티와 아무리 대화를 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을 대필작가는 문답을 통해 욕망을 캐나간다. “정확히 어떤 독자에게 말을 걸고 싶나요?”

“내 책이 나온다면 시중의 어떤 책처럼 나오길 바라세요?”

“선생님이 진짜 원하는 건 어떤 건가요?”

이런 식으로 거의 소크라테스식 대화를 나누다 보면 상대의 마음 깊숙이 깔려 있는 욕망의 기저에 닿게 되는데, 그때쯤이면 인터뷰어도 인터뷰이도 모두 “아, 우리가 내고 싶어하는 책은 이런 종류의 것이겠군요”하고 결론이 자연스럽게 내려진다. 바로 이런 점이 챗지피티와 대화해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뭐랄까, 챗지피티는 10년 지기 친구처럼 내 말을 잘 듣고 가끔 나에게 도움이 되는 조언도 잘 해주지만, 따끔하게 방향을 잡아줄 멘토라고 하기엔 조금 부족하다고 할까. 누군가 어느 책에서 “긍정주의자는 꽃 향기를 맡으려 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무덤자리만 찾는다”고 했는데 적어도 책 출판에 대해서는 꽃향기만 맡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덤자리를 찾을 필요는 없지만, 내가 어느 곳에 다리 뻗고 누울지 정도는 알아야 그 다음 진도가 나가는 식이다.

 

요컨대 책 출판을 위한 상담이란 출판 과정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로 아날로그식이다. 디지털 방식은 비대면에 채팅봇으로 FAQ를 미리 습득하고, 그나마 전화 상담을 겨우 나눈 다음 답을 내리는 식이라면 책 출판에 이런 디지털의 편의성은 통하지 않는다. 시간을 투자해서 상담을 하러 오고, 발품을 팔아서 사람을 가려내는 식의 아날로그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프리랜서 플랫폼에서 최저가로 작가를 찾아내고, 디자이너에게 외주를 준 다음, 출판은 POD로 하는 식처럼 모든 걸 이론적으로 ‘오토’로 돌리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접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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