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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돌담 위를 걷다>가 출간되었습니다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2일 전
  • 2분 분량

독립투사의 아들, 4선 국회의원

— 한 보수 정치인의 40년 정치 일지 『돌담 위를 걷다』 출간

 

만주 벌판에서 군자금을 품에 안고 달렸던 독립투사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사람이 있다. 1987년 6월, 자유를 외치다 서대문 형무소에 갇혔고, 3당 합당을 거부하며 "정치는 의리"라고 외쳤고, 1,627표 차이의 낙선과 경선장 폭력을 견디며 네 번의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내를 4년간 간병하다 떠나보낸 뒤, 그는 색소폰을 들었다. 전 4선 국회의원 이규택(84)이 대한민국 현대 정치 40년을 한 권에 담은 회고록 『돌담 위를 걷다』를 출간했다.

 

"형무소 돌담 위를 걷는 심정으로"

책 제목은 저자가 정치 입문기에 민추협 공동의장 김상현 선배로부터 들은 충고에서 왔다. "정치인은 늘 형무소 돌담 위를 걷는 심정으로 살아야 한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잘못되면 감옥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권력 앞에서 자기 절제를 잃지 말라는 경고. 이규택은 이 한마디를 40년간 품고 살았다고 말한다.

함께 전해 받은 '생선가시론'도 마찬가지다. "돈은 생선과 같다. 가시를 잘 발라 먹지 않으면 목에 걸려 생명을 위협한다." 실제로 저자는 지방선거 때 공천 후보로부터 현금 2억 원이 든 박스를 받고 다음 날 아침 7시에 고스란히 돌려보냈다. 이천에서도 도자기 항아리에 담긴 2억 원 넘는 거액을 즉시 반환했다. 그때마다 아내가 한마디 했다. "여보, 두 다리 뻗고 삽시다."

 

만주에서 여의도까지

전체 5부 19장. 1942년 만주 용정 출생부터 현재까지, 개인사와 정치사가 씨줄과 날줄처럼 엮인다. 제1부 "뿌리, 그리고 저항"에서는 독립투사 아버지 이영종의 삶과 6월 항쟁, 서대문 형무소 수감 경험을 서술한다. 한 평도 안 되는 감방에서 양동이로 용변을 보며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흥얼거렸다는 대목은, 민주화 시대의 체온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장면이다.

제2부 "의리의 정치"에서는 1990년 3당 합당 거부, 13대 총선의 의문의 정전 사태, 1,627표 차이의 패배, 그리고 4년간 여주 바닥을 돌며 7,200명의 상갓집을 찾아가고 2,700명의 주례를 선 이야기가 나온다. 제3부 "권력의 맨얼굴"에서는 옷 로비 청문회에서 앙드레 김의 본명(김복남)을 밝히는 일화, 경기지사 경선장에서 정치 깡패에게 맞아 전치 3주 부상을 입은 사건, 대북 송금 특검을 둘러싸고 63빌딩에서 노무현 당선자와 벌인 담판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제4부 "하이브리드 전쟁"에서는 박근혜 탄핵 전후의 정치 격변과 친박연대 창당 과정을, 제5부 "고난이 명품을 만든다"에서는 정치를 떠난 이후 색소폰 연주와 요양원 봉사를 통해 삶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여보, 이제 다 끝난 일인데… 다 용서해요"

책에서 가장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 장은 14장, "사별(死別): 숭고하고 아름다웠던 한 송이 국화꽃"이다. 시한부 6개월 선고를 받은 아내 이재옥 여사는 4년을 더 버텼다. 저자는 이 장에서 정치인이 아닌 남편의 목소리로 말한다. 아내의 마지막 순간, "이제 다 끝난 일인데… 다 용서해요"라는 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쓴다. 정치 보복의 스트레스가 화병이 되어 아내를 앗아갔다고 확신하는 저자의 목소리에는, 정치 회고록의 관례적인 비장함과는 다른 결의 감정이 흐른다.

 

팔순 넘어 색소폰을 드는 이유

여의도를 떠난 뒤 저자는 색소폰을 배웠다. 새벽마다 광교산 형제봉 자락에 올라 연주하고, 수원 인근 요양원을 돌며 봉사 연주를 한다. "정치는 나를 투사로 만들었지만, 음악은 나를 다시 인간으로 돌려놓았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의 후반부는 전반부의 비장함과 전혀 다른 톤으로 흐른다. 백 마디의 정치 구호보다 한 곡의 색소폰 선율이 사람의 마음을 더 깊이 어루만질 수 있다는 깨달음. 이 책이 단순한 정치 회고록에 머무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자 소개 — 이규택

1942년 만주 용정 출생. 성동고, 서울대 사범대학 졸업. 중앙일보 동양방송(TBC) 입사 후 마리아 칼라스·뉴욕필하모닉 내한 공연을 성사시킨 문화기획자 출신이다. 1980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으로 KBS로 이적, 1984년 재야 민주화 인사들과의 교류를 이유로 강제 해직되며 정치의 길로 들어섰다.

민추협 대외협력국장, 6월 항쟁 국본 상임집행위원을 거쳐 14대(1992)·15대(1996)·16대(2000)·17대(2004) 국회의원을 지냈다. 국회 교육위원장, 한나라당 원내총무(원내대표), 최고위원을 역임했으며, 대북 송금 특검법 통과를 주도했다.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으로 자산 26조 원을 달성하는 등 경영인으로도 활동했다. 충남대학교 교육학 명예박사. 현재 자유헌정포럼 상임 대표, 민족중흥회 부회장, 세계한인상공회총연합회 부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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