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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도서★<여수의 穴>가 출간되었습니다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5월 26일
  • 2분 분량

"나라가 몸통이라면 여수는 혈(穴)이다"

수군본영이 자리한 나라의 급소, 여수. 임진왜란의 첫 승전지이자 해방 정국 최대의 비극이 일어난 곳. 이 도시의 역사를 평생 발로 쫓아온 향토사가가 있다. 여수·순천 10·19사건 유족회원이기도 한 김숭평 저자가 고려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수라는 이름에 켜켜이 쌓인 이야기를 한 권으로 엮었다.

『나라의 혈』은 일반적인 학술서가 아니다. 연호 표와 인명, 지역이 나올 때마다 주해를 붙인 '향토비사'에 가깝다. 고려사절요, 《징비록》, 《한국전쟁사》 같은 문헌 기록 위에, 마을 어른들의 증언과 저자 자신이 발품 팔아 모은 현장의 기억이 포개져 있다. 교과서에 한 줄로 요약되는 사건 뒤편에 어떤 사람들이 살았는지, 그 숨결이 문장 사이사이에 배어 있다.

여수는 왜 '나라의 혈'인가

제목의 '혈(穴)'은 몸의 급소, 경혈을 뜻한다. 조선 수군본영이 있던 여수 국동 떡샘골은 나라의 몸통을 지탱하는 핵심 거점이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거북선을 건조하고, 옥포에서 첫 승전을 거둔 곳. 충무공은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若無湖南 是無國家)'고 했는데, 그 호남 방어의 심장이 바로 여수였다.

그런 여수에서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한 제14연대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다. 이 사건은 여수 시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반란의 와중에 사살된 장교, 뚜껑 연 가마니 위에 늘어놓아진 시체들, 반란군에게 강제로 끌려나와 인민대회에 참석해야 했던 보통 사람들. 김송평 저자는 10·19사건 유족으로서, 증언과 문헌을 교차 대조하며 당시 여수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집요하게 복원해 나간다.

다섯 개의 장, 600년의 결

제1장 '고려말 여수'에서는 삼한시대부터 왜구의 침입, 유탁 장군의 장생포 대첩까지, 여수라는 지명이 어떻게 생겨나고 변해왔는지를 추적한다. 제2장은 이순신의 전라좌수사 부임부터 진남관 창건, 하멜의 표류, 갑오개혁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여수의 궤적을 따라간다. 오동도 방파제 축조, 천일고무공장, 여수-광주 간 철도 개통 같은 일제강점기 이야기도 이 장에 담겨 있다.

제3장과 제4장은 이 책의 무게 중심이다. 해방과 미군정, 남한 단독정부 수립, 그리고 14연대 반란사건의 전말이 100쪽 넘는 분량으로 펼쳐진다. 단순한 사건 나열이 아니다. 반란 당일 신월리 마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신근마을 박석만 씨가 81세에 들려준 후일담, '박 바가지'라는 별명이 붙은 사연, 10월 27일 여수 시가지를 삼킨 대화재의 원인을 둘러싼 엇갈리는 증언까지 — 역사의 큰 흐름 속에 묻힌 개인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박정희와 여수의 인연, 백선엽의 역할, 국가보안법이 여수 시민들의 삶에 드리운 그늘도 빠짐없이 다룬다.

제5장 '우리와 오늘'은 여수-돌산 연륙, 이락사 건립, 마래산 부관 소위 이야기 등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아우르며, 이 모든 역사가 '지금 이곳'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소개

 전남 여수 봉산동 출생. 여수·순천 10·19사건 유족회원. 평생 고향 여수의 역사를 발로 걸으며 기록해온 향토사가. 전임 시장, 문화원장 등 지역 선배들의 유지를 이어 비사(秘史)를 수록하고, 전국 명사들에게서 수집한 시대적 배경과 증언을 엮어 여수의 숨은 이야기를 복원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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