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집제작 15개 보건소를 취재하면 알게 된 것들
- 리퍼블릭 편집부

- 9월 16일
- 2분 분량

얼마 전 전국 15개의 보건소를 취재 차 다녀왔습니다. 건강 관련 공공기관(이라고 표기하죠) 실무자와 함께 5000km에 육박하는 거리를 자차로 이동하는 건 그도 저도 고역이더군요. 취재 시간보다 긴 이동시간, 좁은 차 안에서 일면식이 없는 사람들끼리 나눌 수 있는 대화의 범주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제가 이렇게나 스몰토크가 안 되는 인간인 줄 이번에 처음 알았네요.
제가 30대 초반일 때는 10년 뒤에도 현장 취재를 다닐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습니다. 그 나이에는 다 ‘데스크’ 일만 보는 건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여전히 현장으로 가야 할 이유가 있고, 인터뷰를 해야 할 일들이 잔뜩 있었습니다. 가끔 처음 취재 동행을 하는 발주처 실무자 분들이 묻는 말이 있습니다. 고작 1시간 남짓 인터뷰 할 거면 화상으로 하는 게 낫지 않느냐고.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는데요.
사례집 제작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첫 단추가 기획이라면, 이 단추를 잘 꿰어나가는 첫 번째 실마리가 취재라는 걸 깨닫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례집, 이라는 말 그대로 현장에서 실무자들과 눈을 맞추고 숨결을 느끼면서 인터뷰를 하는 건 인터뷰어 입장에서는 일종에 ‘맥’을 짚는 것과 비슷합니다. 단순히 화면으로 얼굴 보고 얘기하는 것과 차이가 있죠.
수백킬로 미터를 달려온 사람에게 진심을 털어놓지 않기란 꽤 어렵습다. 묻는 질문에 애초에 응답할 의도가 없는 말까지 딸려 나오도록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저는 사례집 콘텐츠의 핵심을 꿰뚫은 키워드를 도출해낼 때가 많습니다. 이번에도 그랬고요. AI가 온갖 글을 척척 써내는 시대에도 굳이 시간을 쥐어 짜내서 현장으로 가는 이유입니다. 결국 좋은 콘텐츠의 핵심에는 ‘사람’이 있다는 거죠.
정작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사례집 제작 일정이 빡빡한 데다 취재에 상대가 제 시간에 응하도록 ‘설득’하는 섭외의 지난함까지 더해지면, 게다가 지역이 이번처럼 전국으로 퍼져 있으면 거의 영화촬영보다 빡빡한 스케줄이 나올 수밖에 없죠. 서울 영등포부터 전남 신안까지, 15개 보건소를 자차로 이동하면서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은 단 일주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다른 프로젝트 일정 때문에 지방에 머물며 동선을 짤 수도 없는 입장이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처럼 한 곳을 찍고 다시 서울로 부랴부랴 돌아오는 무시무시한 동선이었죠. 고속도로에서 핸들을 붙잡고 있으면 가끔 정신이 멍해져서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득 20대 때 사례집 제작 대행사에서 일할 때가 생각나더군요. 그때도 저는 전국 캠핑장 취재를 의뢰한 한 잡지사의 별책부록을 만들기 위해 이런 식으로 취재를 몰아쳤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 사수가 했던 말이 지금도 기억나는데요. “너 그렇게 하다가 죽어”
40대 중반에 이렇게 해도 아직 죽을 만큼 힘들지는 아니더군요. 고속도로를 많이 타면 사고날 확률이야 높겠지만 오히려 콘텐츠라는 게 그런 식으로 밖에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한 번 더 확인하면서 쾌감 비슷한 것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런 제 마음을 알아주시는 건지 가는 곳마다 환대를 해주시면서 지역 특산물을 한아름씩 주신 터라, 매일 저녁 밥상 반찬 걱정을 안 해도 되는 건 보너스고요.
15개 보건소 취재를 하고 나서 깨닫게 된 건, AI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사무실 밖에서 벌어지고 있고, 나처럼 스트레스 받고 배 고플 땐 허겁지겁 먹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만 얻어지는 것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두려워 해야 할 것은 내가 '기능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영혼을 담금질한' 일을 하고 있는가, 그 차이겠죠. 단순히 현장 가서 사진 찍고 글을 쓰는 거야 나중에 로봇이 저 대신 취재를 가겠지만, 가서 무얼 보고 오는가, 취재원이라는 넓은 세계를 어떻게 탐험했는가, 하는 건 여전히 인간의 호흡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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