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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사례집을 준비하는 공공기관 담당자에게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9월 5일
  • 2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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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우수사례집 만들어야 하는데..." 하시면서 연락 주시는 담당자분들 정말 많아요. 그런데 첫 미팅에서 자료 보면 십중팔구 똑같아요. 성과 수치만 빼곡히 적힌 엑셀 파일이랑 "○○사업으로 ○○% 향상되었다"는 식의 딱딱한 보고서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자료로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나와요. 서랍에 쌓여있다가 몇 년 후 폐기 처분되는 그런 책은...

  우수사례는 결국 사람 이야기예요.지난해에 한 지자체 도시재생 사례집 작업할 때의 일이에요. 처음 받은 자료는 "빈집 철거 30채, 주민 만족도 87%" 이런 거였어요. 근데 현장에 가서 주민들 만나보니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80대 할머니 한 분이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50년 넘게 살던 동네인데, 빈집 때문에 밤에 무서워서 못 다녔어. 그런데 이제는 손자가 놀러 와도 마음 놓고 골목에서 뛰어놀게 하지." 수치로는 '빈집 철거 30채'지만, 진짜 이야기는 '할머니가 다시 찾은 일상의 평화'인 거죠.

 모든 좋은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어요. 공무원일 수도 있고, 주민일 수도 있고, 때로는 지역 상인이나 시민단체 활동가일 수도 있죠. 이 사람이 어떤 문제에 부딪혔고, 어떻게 해결해나갔는지를 따라가는 거예요.

 작년에 청년창업 지원사업 사례집 쓸 때, 한 청년이 3번이나 사업계획서가 떨어졌다가 마침내 카페를 차린 이야기가 있었어요. 담당 공무원도 "이 친구 정말 끈질기더라"면서 기억하고 계시더라고요. 성과는 '청년창업 지원 1건'이지만, 실제로는 좌절과 재도전의 드라마가 있었던 거죠.

 갈등과 위기를 숨기지 마세요.공공기관 자료 보면 항상 "순조롭게 진행되어 성공적으로 완료되었다" 이런 식이에요. 근데 현실에서 그런 일이 어디 있어요? 주민 반대도 있었을 거고, 예산 부족으로 골치 아팠을 때도 있었을 텐데.

 한 농촌 마을 재생사업 때는 주민들이 처음에 완전히 등을 돌렸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관에서 와서 뭔 소리 하나" 하면서. 그런데 담당 공무원이 한 달 넘게 매일 마을회관에 앉아서 어르신들이랑 장기도 두고 막걸리도 한잔씩 하면서 마음을 열었다는 거예요. 이런 과정이 있어야 나중에 성공했을 때 더 감동적이잖아요.

 디테일이 생명이에요."주민들과 소통을 강화했다" 이렇게 쓰지 말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소통했는지 써야 해요. 몇 시에 만났는지, 어디서 만났는지,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 어떤 표정이었는지... 이런 게 글을 살리는 요소입니다.

 얼마 전에 쓴 복지사업 사례에서는 홀몸 어르신이 복지사에게 처음으로 "고맙다"고 말씀하신 순간을 이렇게 썼어요. "김 할아버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40년 넘게 쓰시던 안경을 벗어 닦으시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고맙소.'"

 단순히 "대상자가 감사 인사를 전했다"고 쓰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죠?

 결말에 여운을 남기세요.성과 수치로 끝내지 말고, 그 이후의 변화나 앞으로의 기대를 담아주세요. 그 카페 창업한 청년은 이제 지역 청년들 모임 장소를 제공하고 있고, 후배들한테 창업 조언도 해준다고 하더라고요. 하나의 지원사업이 또 다른 이야기의 실마리가 된 거죠.

 사실 우수사례집 만드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거 알아요. 민감한 개인정보도 있고, 기관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그래도 조금만 관점을 바꿔보세요. 성과 홍보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 과정에서 누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담아내는 것이죠. 그러면 분명히 읽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례집이 나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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