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대필 의도의 우물을 파는 작가
- 리퍼블릭 편집부

- 4월 28일
- 2분 분량

릭 루빈은 <창조적 행위>에서
우물 긷는 노인의 일화를 들려준다.
어느 날, 노인이 깊은 우물에서
바가지 물이 쏟아지지 않게
조심하면서 물을 긷고 있는데,
청년이 도르래를 가져와 우물에서
물을 길어올리면서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도르래를 쓰면 편해요.
한 번 써보시겠어요?"
"싫은데."
청년은 물을 긷는 효율이 훨씬 더 나은 도르래를 거부하는
노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노인은 이렇게 답했다.
"난 이렇게 정성스럽게 길어올려 마시는 물이
물맛이 더 좋다고 믿네."
최근 AI와 작업한 글을 가지고 와서
책을 내달라고 요청하는 분들이 많다.
자비출판으로 말이다. 글을 평생 써보지 않았는데
AI 덕분에 책 한 권이 뚝딱 나왔다면서
출판사에서 할 일은 거의 없을 테니 비용을
은근슬쩍(!) 깎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의기양양한 고객에게 '어차피 그 글은 써먹지
못할 거예요. 다 뒤집어야 할 텐 데요..'라고 말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편리한 건 좋다.
불편한 걸 편리하게 만드는 건 AI의 공이다.
교정교열도 사람보다 정확히 보니까
AI가 자비출판 과정을 수월하게 도와준다는
점을 부정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AI가 대필작가를 대신해서 글을 쓴다는
데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계속 강조하지만
그렇다면, 왜 시중에 베스트셀러 목록에
AI가 작가가 되어 쓴 책이 전혀 없는 걸까.
AI에게는 의도가 없다.
내 의도를 AI가 짐작해서 써줬다는 사람은
사실 원래부터 의도가 없는 채로 글을 썼다고
봐야 한다. AI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이걸 생각해보세요'라고 말하긴 한다.
그러나, '이런 글이 나와야 한다'라고 자신의
생각과 의도를 뚜렷하게 내세워서
글을 써나가야 하는 건 작가 자신이다.
대필작가가 '고스트라이터'라고 불리는이유는 말 그대로 상대의 영혼을 들여다보고그의 의도를 짐작하고 이를 대신 글로표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물 긷는 노인과 청년의 비유처럼,
의도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만든 결과물의
품질은 꽤 큰 차이가 벌어진다.
그러나 이는 텍스트를 독해한 후 상징화되는
것이라 당장은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당장은 분량을 뱉어내는 AI가 대단해보이겠지만,
막상 책이 나오면 실망을 금치 못할 것이다.
모두가 똑같은 모델에게 똑같은 명령을 해서
뱉어낸 글이 거기서 거기라면,
대체 자서전대필을 해서 책을 낼 이유가
무엇일까.
의도를 세우는 과정을
AI가 해주면 정말 좋겠지만
아직까지 의도는 사람이 세워야 한다.
그리고 의도가 있는 글만이 시장에서
독자들의 선택을 받는다. 의도가 읽히는
책을 만들려면 여전히
대필 작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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