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권 강매는 이제 그만, 합리적인 자비출판 방법은?
- 리퍼블릭 편집부

- 8월 5일
- 4분 분량

어제 만난 60대 중반의 한 분이 눈물을 글썽이며 하신 말씀이 아직도 귀에 맴돕니다.
"작가님, 제가 바보였나요? 다른 출판사에서 300만원 내고 500권을 받았는데, 집에 박스째로 쌓여있어요.
친구들한테 나눠줘도 다 못 없애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자비출판 업계에 발을 들인 지 벌써 수년이 되어가는데,
여전히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게 참 마음이 아픕니다.
왜 500권을 강요하는 걸까?
사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그게 가장 '편하고' '이익'이 되거든요.
몇 년 전 업계 모임에서 한 동료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아, 편해. 무조건 500권 박스로 밀어버리면 재고 걱정도 없고, 배송비도 한 번에 끝나고." 그 순간 정말 씁쓸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늘 궁금했어요. 정말 모든 저자가 500권이 필요할까? 개인 에세이를 쓴 분이 500권이 필요할까?
전문서를 쓴 교수님이 500권이 필요할까? 아이 성장기를 담은 젊은 엄마가 500권이 필요할까?
답은 당연히 '아니다'였습니다.
진짜 필요한 건 ...
3년 전부터 저희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바로 '필요한 만큼만' 원칙이었죠.
첫 번째로 이 방식을 적용한 고객이 기억납니다. 40대 직장인 분이셨는데, 아버지의 일생을 담은 전기를 쓰고 싶어 하셨어요.
"가족들하고 몇몇 지인들만 보면 되니까 30권 정도면 충분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기존 방식이라면 "최소 300권은 해야 해요"라고 답했겠지만, 저는 "네, 30권 하시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분 얼굴에 번진 안도감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합리적인 비용 구조, 이렇게 짰습니다
집필 단계: 혼자가 아니어도 됩니다
많은 분들이 "책을 쓰고 싶은데 글을 못 써서"라고 포기하세요. 하지만 좋은 이야기가 있다면 글을 못 쓴다고 포기할 이유가 없어요.
지난달에 만난 70대 할아버지 한 분은 6.25 때 피난 경험을 책으로 남기고 싶어 하셨는데, "손이 떨려서 글을 못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안했습니다.
"인터뷰를 하고 작가님 입장에서 글을 대신 써드릴게요."
대필 서비스의 현실적 비용:
인터뷰 및 녹음: 시간당 5만원
원고 작성: 200자 원고지 기준 장당 3,000원
편집 및 교정: 별도 20-30만원
이렇게 하니까 글 못 쓰는 분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게 됐어요. 그분은 결국 200페이지 분량의 멋진 전쟁 체험기를 완성하셨고, 가족들이 너무 좋아했다며 나중에 고마움의 전화를 주셨습니다.
디자인: 내 책에 맞는 옷 입히기
"책은 표지가 전부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디자인이 중요해요. 하지만 모든 책이 같은 수준의 디자인이 필요한 건 아니거든요.
디자인 비용의 합리적 구성:
기본형 표지: 15-25만원 (템플릿 활용)
맞춤형 표지: 30-50만원 (완전 새 디자인)
프리미엄 표지: 60-100만원 (일러스트 포함)
내지 편집도 마찬가지예요. 단순한 텍스트 위주 책이라면 페이지당 2,000원, 도표나 이미지가 많다면 페이지당 5,000원. 이렇게 실제 작업량에 따라 비용을 책정합니다.
얼마 전에 요리책을 만드신 분은 사진이 많아서 내지 편집비가 좀 나왔지만, "정말 예쁘게 나왔다"며 만족해하셨어요. 반면 시집을 내신 분은 깔끔한 텍스트 편집만으로도 충분히 멋진 책이 나왔고요.
출판 대행: 꼭 필요한 서비스만
ISBN 발급부터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온라인 서점 등록까지. 이런 행정적인 일들이 개인이 하기에는 정말 복잡해요.
출판 대행 서비스 비용:
ISBN 발급 및 CIP 신청: 10만원
국립중앙도서관 납본: 5만원
온라인 서점 등록 (교보, 예스24, 알라딘 등): 15만원
종합 출판 대행: 25만원
어떤 분들은 "온라인 서점에는 안 올려도 되니까 ISBN만 발급해주세요"라고 하세요. 그럼 그렇게 해드립니다. 필요 없는 서비스까지 강요할 이유가 없거든요.
인쇄, 이제 필요한 만큼만
이 부분이 가장 혁신적인 변화였어요. POD(Print on Demand) 시스템을 도입한 거죠.
소량 인쇄의 현실
"10권만 인쇄해도 되나요?" "50권 추가로 더 인쇄할 수 있나요?"
이런 질문들에 이제는 당당히 "네, 가능합니다"라고 답할 수 있어요.
실제 인쇄 비용 (200페이지 기준):
1-9권: 권당 12,000원
10-49권: 권당 8,000원
50-99권: 권당 6,000원
100권 이상: 권당 4,500원
물론 대량 인쇄보다는 단가가 높아요. 하지만 500권을 강제로 사서 창고에 쌓아두는 것보다는 훨씬 합리적이죠.
실제로 시집을 내신 한 분은 처음에 30권만 인쇄하셨어요. 그런데 주변 반응이 좋아서 50권, 또 50권 이렇게 추가 주문하시더라고요. 결국 총 200권 정도 인쇄하셨는데, "정말 필요한 만큼만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진짜 합리적인 총비용은?
얼마 전 상담했던 케이스를 예로 들어볼게요.
50대 직장인, 100페이지 분량 에세이 출간
편집 및 교정: 30만원
기본형 표지 디자인: 20만원
내지 편집: 20만원 (100페이지 × 2,000원)
출판 대행: 25만원
인쇄 50권: 30만원 (권당 6,000원)
총비용: 125만원
기존 방식이었다면 300만원 내고 500권을 받았을 텐데, 이 분은 125만원으로 정말 필요한 50권을 받으셨어요. 나중에 필요하면 추가 인쇄도 언제든 가능하고요.
대필,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대필 받으면 내 책이 아닌 것 같아서..."라고 망설이시는 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좋은 이야기가 있는데 표현 능력이 부족하다고 그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면, 그게 더 안타까운 일 아닐까요?
지난해 대필로 진행한 프로젝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게 있어요. 40년간 시골에서 농사지으신 할머니의 이야기였는데, 손녀딸이 "할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다"며 의뢰하신 거였어요.
할머니께서는 한글도 제대로 못 읽으셨지만,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의 농촌 변화사를 몸소 겪으신 산증인이셨거든요. 저희 작가가 두 달 동안 할머니 댁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250페이지 분량의 책을 완성했어요.
대필 프로젝트 진행 과정:
초기 상담 및 방향 설정
인터뷰 일정 협의 (보통 5-10회)
녹음 및 1차 원고 작성
의뢰인 검토 및 수정
최종 원고 완성
비용은 250페이지 기준으로 400만원 정도 들었는데, 그 할머니 댁 식구들이 얼마나 좋아하시던지...
나중에 친척들이 돌려보려고 50권을 추가 주문하시더라고요.
이런 분들께 추천해요
글쓰기가 어려운 분들
나이가 많아서 손글씨가 어려우신 분
좋은 경험담은 있는데 글로 표현하기 어려우신 분
전문 분야 지식은 있는데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게 쓰기 어려우신 분
소량 출간이 필요한 분들
가족사나 개인 에세이 등 가족과 지인들만을 위한 책
전문서나 논문집 등 특정 독자층만을 위한 책
시집이나 소설 등 시장 반응을 보고 싶은 책
단계적 출간을 원하는 분들
처음에는 소량으로 시작해서 반응을 보고 싶은 분
예산을 분할해서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싶은 분
솔직한 이야기
물론 이런 방식이 만능은 아니에요. 대량 인쇄에 비해 단가가 높은 건 사실이고,
전국 서점에 깔아놓고 베스트셀러를 노리는 분들께는 맞지 않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자비출판 저자들은 그런 걸 원하지 않거든요.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서 가족에게 물려주고 싶거나, 전문 지식을 동료들과 나누고 싶거나, 작은 꿈을 이루고 싶은 거죠.
그런 분들에게 500권을 강요하고 수백만원을 받는 건 정말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무리하며
어제 그 60대 분께서 다시 연락을 주셨어요. "이번에는 제대로 하고 싶다"면서 상담 예약을 잡으셨거든요.
이번에는 정말 필요한 만큼만, 합리적인 비용으로 만족스러운 책을 만들어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자비출판은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 수 있는 민주적인 출판 방식이에요.
그런데 그 진입 장벽을 높이거나 불합리한 조건을 강요한다면, 그건 자비출판의 취지에도 맞지 않죠.
더 많은 분들이 부담 없이, 합리적으로 자신만의 책을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저희 같은 출판사가 진짜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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