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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스로의 예상을 깨기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6월 12일
  • 4분 분량

세상만사는 정답을 찾는 게임 같다. 마치 수학문제를 풀 듯 유일한 답을 찾는 게임의 규칙을 무시하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정답보다 당신만의 해답을 찾으라는 인생 조언이 회자되지만 ‘규칙성’에 물든 자신을 부정하는 건 제 스스로 짐을 싸 유배지로 향하려 드는 것만큼 비정상적인 것처럼 보인다.

톰 크루즈가 인사말로 서두를 여는 영화 <미션 임파서블: 파이널 레코닝>은 정답과 해답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 속 AI는 막강한 합리성을 토대로 세계를 지배하는데, 엘리트 관료들이 이를 막지 못하는 이유는 딱 하나 AI와 같은 규칙으로 싸우기 때문이다. 정답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AI와 수학문제 풀기를 겨루면 누가 이길 지는 뻔하다. 이 점을 간파한 톰 크루즈는 자꾸만 정답과 싸우려 드는 동료들에게 ‘해답’을 제시하는데 그건 바로 ‘AI가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하라’는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한다는 건 규칙을 어긴다는 뜻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정답의 문을 두드리는 방 안에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것. 객관적으로 볼 때는 바람직하고 멋져 보이지만 방 안에 있는 플레이어로 당사자가 되었을 때는 좀처럼 하기 어려운 선택. 도대체 어떻게 하면 해답을 정답 고르듯 귀신같이 찾아낼 수 있을까.

 

행운은 비합리적, 비정상적

매달 고객의 지갑을 두드려 돈을 버는 자영업자에게도 정답 칸으로 향하는 주사위 게임은 중요하다. 정답이 뭐지?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지? 머릿속엔 정해진 답이 뭔지 알고 있지만 막상 실전에서 정답을 찾는 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답을 알고 있는데 주변의 모든 환경이 나에게 적대적인 것만 같을 때는 더욱 필사적이 되는데 정답의 중요도가 묵직해지면 그리로 향하는 길은 점점 더 좁아진다.

그러나 분투의 와중에 그냥 데굴데굴 굴러와서 옆에 툭 멈춰서는 ‘행운’을 발견할 때가 있다. 도대체 이 고객은 왜 나한테 온 거지? 합리성의 관점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객,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내 서비스에 적잖은 돈을 내겠다고 조바심을 내는 고객은 비현실적이다. 이처럼 비정상적인 고객을 발견하는 데 내가 들인 노력이 영(0)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아연실색. 성공은 순전히 운에 달린 것이라고 말하는 사업가들이 전부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니다.

 

허탈하지 않은가. 내가 젖 먹던 힘을 짜내 무언가를 성취하려고 하는데 마치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듯, 전혀 다른 경로를 통해 원하는 것을 얻거나 반대로 잃게 되었을 때, 인생은 노력한 만큼 얻는다는 총량의 법칙을 빗겨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행운을 발견하는 것 또한 노력이라고 한다면, 해답은 정답을 찾는 데만 혈안이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닌 그 무엇임에 틀림없다.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규칙성에 목을 매거나 어느 한 가지 가치관에 몰두하지 않는 자유로움에 있다. AI는 유능하지만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 한계를 벗지 못하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영화 속에서 톰 크루즈가 AI가 예상하지 못하는 행동을 하라는 건, 규칙성을 벗어나서 합리성에 반하는 선택을 하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그 선택이 미친 짓처럼 보여서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하는 게 문제다. 정답을 찾는 관점에서는 결론으로 향하는 경로가 거의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해답을 찾아서 규칙을 무시하면 경로 이탈, 예선 탈락이다.

 

인생 좌표를 한 칸씩 옆으로

이런 선택을 일부러, 스스로, 흔쾌히 할 수 있을까.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규칙성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선택을 하려면 일단 중심을 비워야 한다. 반드시 뭐뭐 해야 한다는 관념을 내려놓아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상식과 도덕, 관행과 인정투쟁으로 꽉 차 있는 머릿속을 휴지통처럼 비운다고? 그게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톰 크루즈는 영화 속 가상의 인물로 분했기 때문이지 현실에서 이런 사람은 보기 드물 것이다. 하지만 정답을 찾는 대부분의 인생 게임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걸 알 정도로 경험이 쌓이면, 좌표를 한 칸씩 옆으로 옮기는 선택은 가능하다. 나이가 들면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반드시 뭐뭐 해야 한다’라는 정언명령에 따르지 않게 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꼭 나이가 많지 않더라도 정답을 찾는 과정에서 해답을 발견하는 우연을 경험하게 되면 나에게 맞는 ‘해답’이란 결국 ‘예상을 깨는 결과’였음을 깨닫게 된다. 내가 내 스스로의 예상을 깨고 무언가를 성취한 경험은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이 아닐까. 내 인생의 해답은 원래 하나밖에 없었다. 수학문제처럼 공통된 정답이 아니라, 그 상황과 조건, 당시의 생각과 느낌에 딱 맞아떨어지는 결론은 시시각각 달라진다. 인생은 타이밍이니까. 하나 뿐인 정답을 찾으려 버둥거릴 때에는 소모적이다. 반면 언제 찾아올지 모를 해답을 기다리는 건 묘미에 가깝다.

 

어떻게 하면 이런 묘미를 즐기고 살아갈 수 있을까. 톰 크루즈는 아니지만 인생이 ‘미션 임파서블’이 되지 않길 바라는 내가 찾은 해답은 3가지다. 첫째, 마음을 열기. 둘째, 느낌을 따르기. 셋째, 용서하기.

늘 ‘오픈 마인드’로 살아가는 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내 편견과 가치관에 매몰되지 않는 것, 신념을 갖고 살더라도 언제든 담장을 넘을 수 있는 배짱이 필요하다. 저건 대체 왜 저래. 가 아니라 오호, 그것도 충분히 괜찮겠는걸, 의 마음가짐. 그렇게 렌즈를 조율하면서 추구해야 할 건 바로 내 느낌이다.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떠들어도 내 느낌에 ‘옳다’ 혹은 ‘좋다’는 걸 알아차리고 그 방향을 따라가는 것. 내 경험상 느낌은 편견이 없고 세상의 규칙에 얽매이지도 않는다. 그저 그때그때 내가 좋다고 느낀 선택지를 따라가는 것은 세상 모든 일을 행운으로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열린 마음과 상통한다.

마지막으로 용서가 필요하다. 용서는 인생에서 종교에만 국한된 생뚱맞은 단어가 아니다. 톰 크루즈가 AI의 예측을 깬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어야 한다.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 자신으로 인해 인생이 망가진 사람들에 관해 죄책감을 갖고 있다면, 게임의 룰에 휘말리는 것이다. 과거를 털기 위해, 스스로 용서받기 위해 심판의 제단으로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모두를 용서하고 잊는다면, 부채의식 없이 오로지 현재의 판단에 근거해서 ‘예상을 깨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 예리하게 자신을 감시하면 일관성 없고 감정에 휘둘려 들쭉날쭉 한 데다 이중잣대를 가진 위선자가 보이지만, 그런 스스로를 용서하고 같은 관대함으로 타인과 사물을 용서하면 무엇을 원하든 해답을 향한 길이 빨라진다.

 

애초에 정답이 없다는 걸 매 순간 기억하자. 정답이 있다고 믿어야만 편해지는 내 자아를 속여야 한다. 열린 마음으로, 원심력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어느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고 모든 걸 용서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시시각각 해답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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