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제작 시 예술하려는 대행사 어떠신가요?
- 리퍼블릭 편집부

- 10월 10일
- 2분 분량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시간이 무한대로 주어진다면 결과물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좋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다는 건
결국 자원이 부족하다는 뜻이고
자원이 부족하다는
결국 '재원'이 부족하다는 뜻이죠.
시간과 마찬가지로,
돈도 무한정 주어진다면 결과물은 최소한
돈이라는 자원이 부족한 상태로
만드는 것보다 결과가 좋을 것입니다.
늘 그렇듯 백서제작
시간은 촉박합니다.
애초에 백서제작을 위해
할애된 자원이 없는 채,
회사나 기관의 목적성에 맞게
'부수적으로(?)' 제작되어야 하는
백서의 운명은 대체로
기관장이나 의사결정권자의 개인 취향에
따라 좌우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백서제작자는
반드시 내가 이걸 만들었다는 서명을
어딘가에 남겨야 하는데,
문제는 그걸 발주처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죠.
하다 못해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 경사면 콘크리트
도포 작업에도 한 귀퉁이에는
작업자의 영문 이니셜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걸 내가 만들었다"는
소박한 자부심이라도
없다면 인간이 무언가를
창작하는 데는 경제 논리 이상의
의미가 없겠죠.
단순히 투입->결과,
라는 프로세스를 통해서
돈을 버는 일이라면
AI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기획자는 어서어서
한 때는 모두가 비난했던 그 '장인'의
역할로 돌아가야만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좋습니다. 작가님이 어련이 알아서 하시려고요..괜찮아요, 시안은 이게 좋네요. 이걸로 해주세요.
사실 이런 대화는
백서제작 업체가 가장 좋아하는
대화입니다.
일사천리, 속전속결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건 마치 뻥 뚤린 고속도로 같죠.
인쇄까지 마감 기한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문체의 감도나 백서 본문에
구사된 단어의 적확성을
논하는(이 경우는 마치 고속도로 위에 앉아 뜨개질을
하자는 격인데) 것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그렇지만 이쪽에서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합니다.
돈을 주는 상대가 아량이 넘치게도
제작의 전권을 넘긴 상태라면, 실험을 하기 딱
좋은 상태입니다. 예술을 해보는 거죠.
디테일의 차이를 만들고,
파격적인 디자인도 시도해보면서 내가 만든
작업물이 구성원의 눈에 띄도록, 하다못해
기관장이 깜짝 놀랄 정도로 바꿔보는 거죠.
물론 그 시도는 자주 실패하고,
수시로 롤백되면서 얼핏 안 하니만
못한 헛발질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안목에 확신과 자신이 있다면,
결국 이를 설득하는 것 또한
실력을 쌓아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표지 시안도 조금씩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보려는 노력
그렇지 않고 단순히 발주처의 '컨펌'이수월한 결과물을 뽑는 데 치중하면 어떻게 될까요.
상대적으로 백서제작의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발주처의 눈높이에 맞는 결과물이 나올 테고,
그건 결국 레퍼런스의 연속성 측면에서 점차
하향평준화된 결과물을 만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국 내가 예술을 하는 것이,
나에게도 이롭고 발주처에도
이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기적인 목적이
이타적인 결과를 만드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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