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사례집 제작, 대행사는 더 이상 필요 없다?
- 리퍼블릭 편집부

- 9월 8일
- 3분 분량

우수사례집 제작, 대행사는 더 이상 필요 없다?
AI의 기술력이 급등하면서 나타나는 두 가지 양상. 나처럼 대행업을 하는 분들은 대체로 놀라기보다는 좌절하고 있다. 기획도, 분석도, 문서 작성도, 심지어 영상 편집 마저도 알아서 하는 AI 에이전트를 보며 과거 수년 간 자신이 갈아넣은 노동력을 떠올리며 배신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월스트리트에서 펀드매니저로 일한다는 한 유명 유튜버는 투자 관련 영상을 올리다가 접고서 AI 에이전스 영상 소개로 콘셉트를 바꾸고 조회수도 더 잘 나온다고 했다. 눈부신 AI의 발전 속도를 보며 그는 최근 미국공인회계사 자격증을 땄는데 금융계의 최상위 레벨에서 일하는 그조차 자기 직업이 10년 안에 사라질 게 확실하다며 전직을 진지하게 고민중이라고.
AI의 도움을 받으면 정말 편하고 경제적일까?
AI 에이전트의 발전을 반기는 부류는 이런 유의 기술을 활용해 일은 덜고, 조직 내에서 인정받길 원하는 직장인들인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의 손이 필요한 조직 내에 있는 사람들은 일당백의 업무를 아웃소싱해줄 AI의 진화를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조직 내에서 주어진 일을 AI에이전트의 힘으로 손쉽게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대행사는 불필요해질까. 이론적으로 보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모든 걸 스스로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은 AI의 등장 이전에도 혼자서 기술과 요령을 습득해 대행사에 나눠줄 돈을 아꼈다. 법인 등록을 행정사에게 맡기던 사람들이 AI가 등장했다고 해서 행정사를 찾지 않게 될까? 적어도 아직까지는 그런 것 같지 않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우수사례집 제작을 고민하는 기관에서는 줄어든 예산으로 어떻게 하면 사례집을 잘 만들지 고민한다. 더러는 AI 에이전트의 도움으로 실무자가 실제로 투박할지언정 기획도 하고 글도 작성해서 편집디자인이나 인쇄만 일부 외주를 주는 사례도 나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일이란 모름지기 프로세스의 연속과 조율의 반복임을 아는 사람이라면, 우수사례집 한 권을 제작하는 게 글을 잘 쓰거나 그럴듯한 기획서 한 장을 만드는 실무와 별개의 문제라는 걸 잘 알 것이다. 요컨대 우수사례집을 제작하는 일의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어떤 자료를 토대로 어떤 콘텐츠에 의미 부여를 할지, 또 그 결과물로 내부 구성원을 어떻게 설득할 지를 생각할 때 이를 객관적 시각으로 리드하고 더 나은 방향을 제언해줄 수 있는 전문가의 역할은 여전히 필요하다. AI 시대에 직무 중심으로 생각하면 우수사례집 제작에 기획자, 작가는 필요없을 수 있지만, 완성도라는 기준을 놓고 보면 ‘내러티브 빌더(Narrative Builder)’ 단순 맥락이 아니라 이야기의 큰 흐름을 설계하는 사람. ‘컨텍스트 메이커(Context Maker)’ 맥락을 “만드는 사람”의 중요도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사례집 제작 시 중요한 건
맥락, 방향, 기획
우수사례집이나 백서 등의 기관 홍보물을 제작할 때 이러한 ‘내러티브 빌더’가 필요한 이유는 3가지다. 바로 맥락과 방향, 그리고 기획(제안) 때문이다. 지도를 보고 목적지를 정하는 문제라면 답은 명확하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가는 데 비행기를 타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기관 홍보물을 만들 때 글이 나오고,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파란색과 빨간색 중 하나를 택하는 문제라면 정답이 없다. 다만 ‘왜 파란색을 골아야 하는가’에 대한 의미 부여와 설득의 작업이 필요한데, 이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맥락(context)’이다.
그리고 맥락은,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맞부딪히게 되는 사건을 놓고 벌어지는 해석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요컨대 사람의 손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맥락을 알면 바람이 어느 쪽으로 부는 지 ‘방향’을 이해하게 되고, 그 방향에 맞게 ‘기획(제안)’을 하게 된다. 기획이란 주어진 자료를 뭉쳐서 눈사람을 만드는 식으로 하나의 키워드를 도출하는 작업이 아니다.
아무 것도 없던 ‘무(無)’의 상태에서 상징과 메시지가 들어간 ‘유(有)’의 개념을 세우고, 이를 계속 유지해나가는 데 다수의 뜻을 모으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이다. 이걸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아 해결할 수 있을까? AI 에이전트가 돕는 것은 기능과 수단이다. 목적과 비전을 설계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으로 남는다.
그럼, 매일 쏟아지는 과업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실무자가 이 작업에 오롯이 집중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냐, 라고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실제로 우수사례집 제작 문의를 하는 실무자들 대부분은 AI 에이전트의 도움을 받은 자료를 내밀면서 도움을 요청한다. 어떤 맥락과 방향으로 우수사례집을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 채, AI가 비약적으로 압축한 자료를 주면 마치 방 정리를 깔끔하게 하면 인테리어를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같다. 도움이 안 되진 않겠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깔끔하게 정리된 방보다 오히려 그 집이 어떤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했는지를 파악하는 측면에서 원래의 정리 안 된 방을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우수사례집 제작자도 마찬가지다. AI 에이전트의 자료 뭉치를 가져온 분들에게 늘 하는 똑같은 이야기. “이거 AI 돌리기 전 원본 데이터를 주실 수 있나요?” 그럼 놀랍게도 많은 경우, 원본 자료가 유실되거나 흩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원본 데이터보다 AI가 정리된 데이터를 더 믿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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