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삭, 원문 훼손? 더 나은 창작? 그 미묘한 경계선에서
- 리퍼블릭 편집부

- 9월 5일
- 2분 분량

"첨삭 좀 부탁드려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속으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십니다. 직업병일까요. 첨삭이라는 게...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일이거든요. 단순히 맞춤법 틀린 거 고치고 문장 매끄럽게 다듬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건드리는 일이니까요.
얼마 전에 한 기업 임원분의 강연 원고를 첨삭하게 되었어요. 처음 받은 원고를 보는데... 솔직히 좀 당황스러웠어요. 문장은 길고 복잡하고, 전문용어는 남발하고, 무엇보다 "뭘 말하고 싶은 건지" 잘 안 보이더라고요.
그런데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완전히 달랐어요. 말로는 엄청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하시는 거예요. 아, 이분의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구나 싶었죠. 그때 첨삭의 첫 번째 원칙은 그 사람의 진짜 목소리를 찾아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첨삭은, 어찌보면 교정이 아니에요. 많은 분들이 착각하시는데, 교정은 틀린 걸 고치는 거고, 첨삭은 좋은 걸 더 좋게 만드는 거예요. 때로는 문법적으로 완벽한 문장을 일부러 깨뜨리기도 해요. 왜냐하면 그 사람다운 말투가 더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저는 그때 정말 많이 당황했습니다"라는 문장이 있다면, "그때 저... 정말 멘붕이었어요"로 바꿀 수도 있어요. 문법책에서는 틀렸다고 할지 모르지만, 독자에게는 훨씬 생생하게 다가가죠.
그런데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게 있어요. 저자의 의도를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한 번은 소설 첨삭을 하다가 큰 실수를 한 적도 있어요. 작가가 의도적으로 애매하게 써놓은 결말을 제가 명확하게 정리해버린 거죠. 나중에 작가가 "그게 제가 노린 여운이었는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정말 미안했어요.
독자를 생각하되, 저자를 잊으면 안 돼요. 이게 첨삭의 가장 어려운 부분이에요.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저자의 개성과 의도는 살려야 하거든요. 마치 번역하는 것과 비슷해요. 원문의 뜻은 전달하되, 번역문만의 자연스러움도 살려야 하는.
실무에서 제일 중요한 건 소통이에요. 저는 첨삭할 때 항상 수정 이유를 달아둬요. "이 부분은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아서 풀어서 썼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그러면 저자도 제 의도를 이해하시고, 다음엔 스스로 그런 방식으로 쓰시거든요.
가끔 저자분들이 "다 맡길 테니 알아서 해주세요"라고 하시는데... 이게 제일 곤란해요. 첨삭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저자와 함께 하는 작업이거든요. 제가 아무리 문장을 다듬어도, 저자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아요.
첨삭의 기준은 '완벽함'이 아니라 '적절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술논문과 에세이의 첨삭 기준이 다르고, 20대 독자용과 50대 독자용이 또 달라요. 때로는 일부러 어려운 단어를 쉬운 말로 바꾸고, 때로는 너무 가벼운 표현을 조금 격을 높여서 쓰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첨삭자의 역할은 '잘 숨는' 거예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제가 손댄 원고를 보고 "아, 이거 첨삭했구나"가 보이면 실패한 거죠. "이 작가 참 글 잘 쓰네"라고 생각되어야 성공이에요. 저희는 무대 뒤의 조명 기사 같은 존재거든요. 배우를 더 빛나게 만들되, 관객에게는 보이지 않아야 하는.
요즘은 AI가 첨삭도 해준다고 하던데... 기술적으로는 대단하지만, 아직은 이런 미묘한 감정의 결까지는 못 잡아내는 것 같아요. 사람의 글에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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