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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출판 CEO의 회고록은 이렇게 쓰면 안 됩니다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9월 16일
  • 2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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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서 큰 성공을 거두신 회장님들께서 자서전 출간을 결심하실 때, 종종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일반 자서전을 여럿 쓴 경험과 박사학위까지 받은 작가의 필력이라면, 내 인생의 파노라마 역시 근사하게 펼쳐내 주리라 믿으시는 것이지요. 그 마음, 왜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이럴 때마다 난감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잘 익은 묵은지로 프렌치 코스 요리를 만들어달라는 것과 같거든요.

물론 묵은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재료입니다. 깊은 맛과 사연을 품고 있죠. 부모님 자서전이 바로 그 묵은지와 같습니다. 한평생 자식을 위해 헌신한 부모님의 삶, 그 굽이굽이 서린 한과 눈물, 소박한 기쁨을 담아내는 일은 그 무엇보다 숭고합니다. 독자는 오직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이기에, 진솔한 회고와 가슴 먹먹한 감동만으로도 책의 소임은 충분합니다. ‘가보(家寶)’로 길이 남을, 우리 가족만의 ‘기록'인 셈이지요.

하지만 회장님의 자서전은 전혀 다른 궤도 위에 놓여있습니다. 회장님의 책상 위에는 개인의 역사를 넘어, 수많은 직원들의 생계와 회사의 미래가 걸려있습니다. 이 경우, 아마 독자들은 회장님의 가족이 아닐 겁니다. 회장님의 성공 신화 뒤에 숨겨진 ‘성공의 열쇠’를 찾으려는 예비 창업가, 회장님의 리더십을 배우고 싶은 중간 관리자, 우리 회사에 미래를 걸어도 될지 가늠하려는 똑똑한 인재들입니다. 그들은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위한 ‘한 수’를 얻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일기장’이 될 것인가, ‘경영서’가 될 것인가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촉망받던 IT기업 대표님 한 분이 부모님 자서전을 쓰셨던 작가에게 본인의 창업 분투기를 맡기셨습니다. 결과물은 그야말로 한 편의 ‘인간극장’이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밤새 코피를 쏟으며 코딩하던 나날들, 동료의 배신과 눈물 젖은 소주잔… 가슴 뭉클한 이야기였죠.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정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했다는 거죠? 핵심 기술에 대한 설명은 왜 없나요?" 결국 그 책은 '대표님의 잘 쓴 일기장'으로 남았습니다. 작가는 선의를 다했지만, 비즈니스의 ‘맥’을 짚어내고 시장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는 서툴렀던 것입니다.

반면, 저희와 함께 자서전을 펴내신 한 반도체 장비업체 회장님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무뚝뚝하고 평범한 공학도 출신이었지만, 저희 작가는 몇 달간의 인터뷰와 자료 분석을 통해 그의 말과 행동 속에 숨겨진 ‘승부수의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남들이 모두 반대하던 시절, 기술 하나만 믿고 일본행 비행기에 올랐던 이야기 속에서 그는 단순한 ‘뚝심’이 아닌, 시장 데이터를 근거로 한 냉철한 ‘확신’을 읽어냈습니다. 직원들과의 투박한 대화 속에서는 사람을 아끼는 그만의 ‘인재 경영 철학’을 건져 올렸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업계에서는 ‘영업의 신’으로 불리던 회장님께 ‘전략가’라는 새로운 별명이 붙었습니다. 회사의 주가는 눈에 띄게 올랐고, 무엇보다 똑똑한 젊은 엔지니어들이 “회장님 밑에서 배우고 싶다”며 구름처럼 몰려들었습니다. 자서전 한 권이 회사의 미래를 바꾼 최고의 ‘투자 설명서(IR)’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최고의 ‘요리사’는 재료의 본질을 꿰뚫어 봅니다

부모님 자서전 작가가 한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인생의 전문가’라면, CEO 자서전 작가는 기업과 시장의 생리를 꿰뚫어 보는 ‘비즈니스 전략가’에 가깝습니다. 단순히 문장이 유려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 성공이라는 결과 뒤에 숨겨진 ‘의사결정의 지도’를 그려낼 줄 알고,

  • 회장님의 투박한 언어 속에서 시장을 설득할 ‘핵심 메시지’를 벼려내며,

  • 개인의 서사를 넘어,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릴 줄 아는 사람.

이런 작가가 CEO 회고록에 필요한 작가입니다. 회장님의 삶은 이미 그 자체로 한 시대의 증언이자 살아있는 경영학 교과서입니다. 이 귀한 재료를 가지고 그저 그런 ‘감동 실화’를 만드는 데 만족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회사의 100년 역사를 여는 ‘전략적 자산’으로 만드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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