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자서전 대필, 천갈래 만갈래의 길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9월 23일
  • 2분 분량
ree

요즘은 포천의 한 정치인을 찾아뵙고 인터뷰 하는 중입니다.

뭐랄까요. 근 10년 가까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글을

쓰는 일을 했음에도 인터뷰를 할 때는 '패턴'이라는 게 없습니다.

매번, 매 사람마다 접근 방식이 달라지죠.

어떤 사람은 자료를 모두 준비해두고, 그걸 인터뷰 하면서

그대로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고, 어떤 사람은 거의 중얼거리듯

대답을 하며 "나머지는 모두 작가가 알아서 해달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죄다 비서관이 해줄 거라고 넘기고,

(이 경우는 예외없이 뒷작업이 어려워지죠)

어떤 사람은 자료를 놓고 팩트 체킹까지 작가와 더블체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가장 어려운 케이스죠)

그런데 저는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의 이런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인터뷰를 수만번 하다보니, 어느 순간부터

질문을 던지는 제가 질문을 받는 사람의 입장으로 자연스럽게

전환되더군요. 질문을 받고 답하는 입장에서, 다양한 반응이

나올 때마다 "저 사람이 왜 저런 반응을 보일까"를 되묻게 되고,

그 질문에서부터 편집기획이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AI가 목차와 글 작성, 표지 시안까지 도와주는 시대인데

어떤 사람들은 기를 쓰고 작가와 인터뷰하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터뷰에서 오솔길을 발견하고 싶어 합니다.

오로지 손품, 발품, 사람의 교류를 통해서만 발견될 수 있는

글의 '맥'이라는 게 있다는 걸 아는 거죠.

책 대필을 할 때마다 힘들긴 해도 제가 인터뷰 방식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간혹 인터뷰를 4번 정도 하자고 하면 저쪽에서

고개를 젖기도 하죠. 한 번에 끝낼 수는 없는지, 자기가 쓴

글을 참고로 하면 인터뷰가 길게 필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는 모르지만 이건 사실 제가 편하자고 그러는

거거든요. 인터뷰를 한 번 한 상대와 인터뷰를 네 번 한 상대는

대필작가의 필력과 무관하게 나중에 글이 나왔을 때

의뢰자의 만족도가 확연히 갈립니다.

거의 천국과 지옥만큼 다르다고 할 수 있죠.

그러니 내 몸 편하자고 작가를 들볶지 않는다면,

작가나 의뢰인 둘 다 몸은 편하겠지만 나중에 결과물을

두고 얼굴을 붉히며 괴로워하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기 어려운 존재입니다.

관찰을 기록하는 업을 가진 대필작가에게 낯 뜨거운 질문도

받아보면서, 비로소 자기가 책을 내는 목적이 무엇인지,

또 자신이 살아온 삶이 무엇이었는지를 비로소 정리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댓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