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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대필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닙니다.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2025년 12월 1일
  • 2분 분량


요즘 출판 상담을 하다 보면 묘한 풍경을 자주 마주합니다. 원고를 들고 오신 분께 몇 가지 질문을 드리면, 본인이 쓴 글인데도 선뜻 대답을 못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에 담긴 표현의 의도나 문장의 결을 여쭤보면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아, 그건 제가 의도한 건 아니고..."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생성형 AI 시대가 열리면서 글쓰기의 문턱이 낮아졌다고들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문턱이 낮아졌다는 것과 좋은 글이 쉬워졌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글이란 무엇일까요. 단어를 문법에 맞게 배열한 결과물일까요. 그렇다면 AI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 글쟁이일 겁니다. 오탈자도 없고, 문장 호응도 완벽하니까요. 그런데 왜 AI가 쓴 글은 다섯 줄만 읽어도 알아챌 수 있을까요. 왜 그 글에선 아무런 울림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글을 결정하는 건 텍스트가 아니라 콘텍스트입니다. 맥락이죠. 그리고 맥락은 생각에서 나오고, 생각은 감정에서 비롯됩니다. AI에게는 감정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품을' 수는 없습니다. 논리적으로 보이지만 방향이 없고, 정돈되어 보이지만 체온이 없습니다. 한마디로 죽은 글입니다.

자서전이나 회고록은 한 사람의 인생 전체를 담는 그릇입니다. 거기엔 성공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실패와 좌절, 후회와 깨달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의 굴곡들이 켜켜이 쌓여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AI에게 '입력'하면 어떻게 될까요. 수학적 패턴으로 정리된 깔끔한 보고서가 나옵니다. 누구의 인생이든 비슷비슷한 톤으로 평평하게 다듬어집니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책을 아무도 읽지 않는다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읽히지 않습니다. 눈으로는 글자를 따라가지만 마음에 닿지 않습니다.

대필 작가의 역할은 단순히 글을 대신 써주는 게 아닙니다. 의뢰인의 이야기를 듣고, 그 안에서 의뢰인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맥락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하셨어요?"라는 질문에 의뢰인이 한참을 생각하다 "그러고 보니..."라며 꺼내시는 이야기, 거기에 진짜 본질이 있습니다. AI는 이 질문을 할 수 없습니다. 대답을 '처리'할 수는 있어도, 침묵 속에서 무언가를 '기다릴' 수는 없으니까요.

좋은 자서전은 의뢰인과 작가 사이의 대화에서 태어납니다. 작가는 의뢰인의 말 속에서 숨은 감정을 포착하고, 흩어진 기억들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냅니다. 의뢰인의 목소리를 살리면서도 독자가 읽고 싶은 글로 빚어냅니다. 이건 기술이 아니라 교감의 영역입니다.

평생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책입니다. 당신의 육십 년, 칠십 년 인생을 담을 단 한 권의 책입니다. 그 책이 AI가 만들어낸 수천 권의 '비슷한 책들' 속에 묻혀도 괜찮으시겠습니까.

세상만사 인풋 대비 아웃풋이라고 합니다. 시간과 정성을 들이지 않은 결과물은 그 가치도 거기에 비례합니다. 효율을 좇다가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일, 책 한 권쯤은 그러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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