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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대필, 이래서 작가한테 맡기는 거구나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20시간 전
  • 2분 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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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서전, 왜 혼자 쓰기 어려운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본다. "내 이야기를 책으로 남기고 싶다." 특히 굵직한 삶을 살아온 사람일수록 그 욕구가 강하다. 사업을 일군 경험, 공직에서의 세월,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교훈. 소재는 넘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막상 쓰려고 앉으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기억은 시간순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중요한 사건과 사소한 에피소드가 뒤엉켜 있고,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장면과 객관적으로 의미 있는 장면이 다르다. 본인에게는 모든 게 소중하지만, 독자 입장에서 뭘 앞에 배치하고 뭘 덜어내야 하는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더 큰 문제는 거리두기다. 자기 삶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어떤 대목은 과하게 부풀리고, 어떤 대목은 당연하다고 여겨 설명 없이 넘어간다. 읽는 사람이 맥락을 모른다는 사실을 잊는다. 결국 본인만 이해하는 글이 되어버린다.

AI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들

요즘은 AI에게 도움을 받으면 되지 않느냐는 말도 나온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문장 다듬기, 아이디어 정리, 초안 작성까지 AI가 꽤 해낸다. 그런데 자서전은 다르다.

자서전의 핵심은 '맥락'이다. 단순히 사건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왜 그 선택을 했는지, 그 경험이 이후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지금 시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녹아들어야 한다. 이건 대화를 통해서만 끌어낼 수 있다. AI는 질문을 던질 수 있지만, 답변 속 뉘앙스를 읽고 더 깊이 파고드는 건 한계가 있다.

또 하나, 톤의 일관성 문제가 있다. AI에게 여러 차례 나눠서 글을 맡기면 매번 문체가 미묘하게 달라진다. 1장은 담담하게 썼는데 3장은 갑자기 감성적이 되고, 5장은 딱딱한 보고서 같아지는 식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로 관통해야 할 자서전이 누더기가 된다. 직접 프롬프트를 조율하며 수십 번 수정하다 보면 차라리 처음부터 쓰는 게 빨랐겠다 싶은 지점이 온다.

무엇보다, AI는 "이 이야기가 정말 책에 들어가야 하는가"를 판단해주지 않는다. 시키면 쓴다. 빼라고 하면 뺀다. 하지만 전체 서사 안에서 이 에피소드가 어떤 무게를 가져야 하는지, 독자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대필이 필요한 이유

전문 대필 작가의 역할은 단순히 글을 대신 써주는 게 아니다. 이야기를 '끌어내고', '구조화하고', '일관된 목소리로 엮어내는' 일이다.

좋은 대필 작가는 인터뷰어이자 편집자다. 본인도 잊고 있던 기억을 질문으로 끄집어내고, 흩어진 에피소드들 사이에서 하나의 서사적 흐름을 찾아낸다. "이 부분은 앞으로 빼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는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우니 배경 설명을 넣읍시다", "이 장면이 책 전체의 클라이맥스가 될 수 있어요"—이런 판단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어야 한다.

호흡의 문제도 있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듯, 책 한 권은 일정한 리듬으로 흘러가야 한다. 어떤 장은 깊이 파고들고 어떤 장은 스쳐 지나가면 독자가 혼란스럽다. 대필 작가는 전체 분량과 깊이를 조율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톤을 유지해준다. 이건 혼자서, 혹은 AI와 함께 작업할 때 가장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결국 자서전은 '내 이야기'지만, 그걸 '읽히는 책'으로 만드는 건 다른 차원의 작업이다. 삶의 무게와 깊이를 가진 분들일수록, 그 이야기가 제대로 된 형태로 남기를 바란다면, 처음부터 전문가와 함께 가는 편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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