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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자서전, 글만 있으면 책이 되는 줄 알았다면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1월 8일
  • 2분 분량

선거철이 다가오면 출판 의뢰가 부쩍 늘어난다. 그중 상당수는 "원고는 다 썼으니 디자인하고 인쇄만 해주세요"라는 요청이다. 직접 쓰셨든, 보좌진이 정리했든, 요즘은 AI의 도움을 받았든 어쨌든 글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원고를 받아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원고가 있다는 것과 책이 될 원고라는 것은 다르다

책을 내본 적 없는 분들이 흔히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워드 파일에 글이 채워져 있으면 그게 곧 원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출판 현장에서 말하는 '원고 완성'은 다른 의미다. 문단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장과 장 사이에 흐름이 자연스러운지, 한 문장 한 문장이 책의 호흡에 맞게 구성되어 있는지를 본다.

실제로 받아본 원고 중에는 문장이 죄다 쪼개져 있는 경우가 많다. 마치 메모를 나열해 놓은 것처럼 한 줄, 또 한 줄. 이런 원고를 그대로 편집에 넣으면 책이 굉장히 어색해 보인다. 일반적인 책을 펼쳐보면 문단이 덩어리로 구성되어 있다. 그 흐름을 만들어주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비로소 디자인에 들어갈 수 있다.

AI로 쓴 원고, 출판 후에도 티가 난다

요즘은 ChatGPT 등 AI의 도움을 받아 초고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솔직히 말해서, 이건 보면 안다. AI가 쓴 문장에는 특유의 패턴이 있다. 깔끔하게 정돈된 것 같지만 어딘가 균일하고, 감정의 결이 없다. 정치인 자서전처럼 개인의 서사가 중요한 책에서 이 문제는 치명적이다.

AI 원고를 그대로 출판하면 책이 나온 뒤에도 티가 난다. 독자들도, 언론도 요즘은 이런 부분에 민감하다. "이 책 AI로 쓴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순간 책의 진정성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AI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반드시 사람 손으로 다시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업계에서는 이걸 '워싱'이라고 부른다. 문체를 자연스럽게 바꾸고, 본인만의 어투와 감정을 입히는 작업이다.

분량도 전략이다

또 하나 자주 발생하는 문제가 분량이다. "내용은 다 넣었어요"라고 하시는데 막상 페이지로 환산하면 200쪽이 간당간당한 경우가 많다. 정치인 자서전이 너무 얇으면 가벼워 보인다. 그렇다고 억지로 늘이면 군더더기가 된다.

분량이 부족할 때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콘텐츠를 보강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편집 디자인으로 여백을 활용하는 것이다. 사진을 넣거나, 장 사이에 휴식 페이지를 두거나, 인용구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다만 이건 원고 단계에서 미리 계획해야 한다. 디자인 들어간 다음에 "사진 넣어주세요"라고 하면 일정이 꼬인다.

일정, 생각보다 훨씬 빠듯하다

출판기념회 날짜를 잡아놓고 역산해서 의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그 역산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점이다. "31일에 행사니까 30일에 책 받으면 되죠?"라고 하시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쇄에 최소 일주일은 잡아야 한다. 그 전에 디자인 시안 확인하고 수정하는 데 또 며칠이 간다. 윤문과 교정교열은 원고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짧게는 사흘, 길면 일주일이다. 거꾸로 계산하면 행사 3주 전에는 최종 원고가 확정되어 있어야 안전하다. 2주 전이면 빠듯하고, 1주 전이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비용 구조를 이해하면 협상이 쉬워진다

마지막으로 비용 이야기. 출판 비용은 크게 세 덩어리로 나뉜다. 원고 작업(윤문, 교정교열), 디자인 작업, 그리고 인쇄비다.

원고 손질과 디자인을 합쳐서 300만 원대 후반에서 400만 원 초반 사이가 일반적인 시장 가격이다. 인쇄비는 부수와 사양에 따라 달라지는데, 올컬러 기준 1,000부 찍으면 권당 4,000원에서 5,000원 사이로 보면 된다. 흑백이면 더 낮아지고, 부수가 늘면 단가는 내려간다.

이 구조를 알면 견적을 받았을 때 어디서 조정이 가능한지 판단할 수 있다. 인쇄비는 크게 깎기 어렵지만, 원고 작업 범위를 조정하거나 디자인 시안 횟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협의할 수 있다. 물론 품질과의 트레이드오프는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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