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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영서 책을 직접 쓰는 대표님들에게

  • 작성자 사진: 리퍼블릭 편집부
    리퍼블릭 편집부
  • 17시간 전
  • 2분 분량

경제경영서 출간을 준비하는 대표들이 늘고 있다. 자신의 사업 경험과 노하우를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려는 시도 자체는 훌륭하다. 문제는 사업을 잘하는 것과 그 경험을 글로 잘 옮기는 것이 전혀 다른 역량이라는 점이다. 편집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하는 대표 저자들의 공통적인 실수를 정리해본다.

가장 큰 문제는 '동종 업계 사람만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이다. 대표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오래 일해온 만큼, 업계 용어와 관행이 체화되어 있다. 그래서 '이 정도는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겠지'라는 전제 아래 글을 쓰게 된다. 하지만 경제경영서의 독자는 반드시 같은 업종 종사자만이 아니다. 오히려 다른 분야의 경영자나 예비 창업자, 직장인이 주요 독자인 경우가 더 많다. 특정 거래처와의 프로젝트를 사례로 든다면, 그 거래처가 어떤 사업을 하는 곳인지, 왜 우리 회사와 일하게 되었는지, 그 프로젝트에서 핵심 쟁점이 무엇이었는지를 처음부터 설명해야 한다.

두 번째 함정은 사례를 나열하되 맥락을 빠뜨리는 것이다. 사업 경험이 풍부한 대표일수록 에피소드가 많다. 중동의 대형 프로젝트, 글로벌 기업과의 협상, 현지 법인 운영의 고충 등 콘텐츠 소재 자체는 풍성하다. 그런데 이 에피소드들을 '조각조각' 나열하면서 각 사례 사이의 연결고리를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A사와 일할 때 이런 일이 있었다, B 프로젝트에서는 저런 교훈을 얻었다 — 이렇게만 쓰면 독자 입장에서는 회고록을 읽는 느낌이 난다. 경제경영서가 회고록과 다른 점은, 사례에서 뽑아낸 원칙이 독자의 상황에도 적용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왜 그런 상황이 발생했고, 어떤 판단을 했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라는 인과관계를 충분히 서술해야 한다.

세 번째는 기업명 처리의 문제다. 경력이 길수록 여러 회사를 거치게 되고, 퇴사 시 비밀유지서약(NDA)에 서명한 경우도 많다. 그렇다 보니 회사명을 밝혀도 되는 건지 판단이 어려운 경우가 생긴다. 원칙은 비교적 명확하다. 내부자 정보를 활용한 폭로나 비판적 서술이 아니라면 기업명을 밝혀도 대체로 문제가 없다. 다만 찜찜한 부분이 있다면 이니셜 처리를 권한다. "국내 대기업인 C사의 미국 법인에 근무할 당시"처럼 쓰는 방식이다. 이니셜만 봐도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더라도, 실명을 명기하는 것과 이니셜로 처리하는 것은 법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일관성이다. 특정 기업을 이니셜로 처리하기로 했다면, 그 기업이 등장하는 모든 대목에서 동일하게 처리해야 한다.

네 번째로 AI 활용의 흔적 문제가 있다. 요즘 원고 작성에 AI를 활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문제는 AI가 생성한 문장의 특유한 문체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경우다. "현장의 시계는 다르게 돌아간다", "전략회의에서 폭탄을 던졌다" 같은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런 문장은 얼핏 세련되어 보이지만, 지금 한국의 독자들은 AI가 쓴 문장을 대부분 구별해낸다. 이런 문장이 인쇄되어 나오면 "이 책 AI로 썼네"라는 반응이 즉각적으로 돌아온다. 특히 해외에서 오래 거주하거나 근무한 대표의 경우, 영어식 어순과 AI 번역투가 겹쳐 어색함이 배가되는 경향이 있다. 영어로는 자연스러운 표현이 한국어로 직역되면 뜻이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우회적이고 문학적인 수사보다는 직관적이고 명확한 서술이 경제경영서에서는 훨씬 효과적이다.

다섯째, 원고 분량에 대한 오해다. 워드 프로그램으로 각 장마다 A4 12~15페이지를 채웠다고 해서 책 한 권 분량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워드는 한글(HWP) 프로그램에 비해 같은 페이지에 담기는 글자 수가 적다. 실제 단행본 250페이지 분량을 채우려면, 초고 단계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1.5배 이상의 원고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만 분량 자체를 억지로 늘리려 하기보다는, 앞서 말한 맥락 설명과 용어 풀이, 사례의 인과관계 서술을 충실히 하면 분량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경제경영서의 경쟁력은 저자만이 들려줄 수 있는 실전 경험에 있다. 그 경험이 독자에게 가닿으려면, 저자의 머릿속에서는 당연한 것들을 글 위에서도 충분히 펼쳐 보여야 한다. 글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생략된 맥락을 복원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원고의 수준은 확연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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