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보고서가 아니라 '백서'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
- 리퍼블릭 편집부

- 3일 전
- 5분 분량

성과보고서가 아니라 '백서'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
매년 연말이면 기업이나 기관에서는 한 해의 성과를 정리하느라 분주하다. 그런데 막상 완성된 보고서를 보면 뭔가 아쉽다. 화려한 디자인에 수치는 가득한데, 정작 이 자료가 어디에 쓰일지, 누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모호하다. 그저 '올해도 열심히 했습니다'라는 의무적인 기록물처럼 느껴진다.
최근 들어 많은 기업과 기관이 성과보고서를 '백서(White Paper)' 형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단순히 내부용 보고서가 아니라, 외부에 공개할 수 있는 전략 문서로 만드는 것이다. 왜 굳이 백서일까?
백서와 보고서, 뭐가 다른가
전통적인 성과보고서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 나열하는 데 집중한다. 사업별 추진 실적, 예산 집행 내역, 정량적 성과 지표 등이 빼곡하다. 말 그대로 '보고'가 목적이다. 주로 내부 결재용이거나 상급 기관에 제출하는 용도다.
반면 백서는 '왜 이 일이 중요한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방점을 둔다. 단순 나열이 아니라 맥락과 인사이트를 담는다. 우리 조직이 어떤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고, 어떤 접근 방식을 택했으며, 그 결과가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지 스토리로 풀어낸다.
가장 큰 차이는 독자다. 보고서는 '윗사람'이 보지만, 백서는 '바깥사람'이 본다. 잠재 고객, 파트너사, 투자자, 언론, 정책 입안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타겟이다. 그래서 백서는 설득과 소통의 도구가 된다.
왜 지금 백서 형식이 트렌드인가
첫째, 성과의 '증명'에서 '확산'으로 관점이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우리 잘했어요"를 보여주는 게 목표였다면, 이제는 "우리의 성과가 산업이나 사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가"를 알리는 게 중요해졌다. ESG 경영, 사회적 가치, 디지털 전환 같은 키워드가 중요해지면서 조직의 활동을 단순 업무 실적이 아니라 '의미 있는 변화'로 포지셔닝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둘째, 콘텐츠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 가치가 크다. 잘 만든 백서는 웹사이트에 올리고, 세미나에서 배포하고, 언론에 보도자료로 내고, SNS에서 일부를 발췌해 공유할 수 있다. 한 번 제작한 콘텐츠를 여러 채널에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광고비 쓰지 않고도 조직의 전문성과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셋째, 채용과 브랜딩에 도움이 된다. 요즘 구직자들은 단순히 연봉만 보지 않는다. 이 회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어떤 성과를 내고 있는지 꼼꼼히 살핀다. 백서 형식의 성과보고서는 "우리는 이런 일을 이렇게 합니다"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강력한 채용 툴이 된다.
넷째, B2B 세일즈에서 큰 힘을 발휘한다. 잠재 고객과 미팅할 때 "저희가 작년에 이런 성과를 냈습니다"라며 백서를 건네면, 그 자체로 신뢰와 전문성을 전달하는 영업 자료가 된다. 특히 공공기관이나 대기업 납품을 준비할 때, 이런 체계적인 자료가 있느냐 없느냐는 큰 차이를 만든다.
백서 형식 성과보고서, 어떻게 만드나
일반 보고서와 제작 절차가 완전히 다른 건 아니다. 다만 기획 단계에서 접근 방식이 달라진다.
먼저 기획 단계에서 독자를 명확히 정의해야 한다. 내부 임원진인가, 외부 고객인가, 정책 담당자인가에 따라 강조할 내용과 톤이 완전히 달라진다. 한 문서로 모든 독자를 만족시키려 하면 오히려 아무에게도 와닿지 않는 자료가 된다.
다음으로 핵심 메시지를 정한다. 이 문서를 읽은 사람이 한 문장으로 기억할 내용이 뭔지 명확해야 한다. "올해 우리는 디지털 전환을 통해 고객 만족도를 40% 높였다" 같은 식으로 말이다. 이 메시지를 중심으로 전체 스토리를 구성한다.
자료 수집은 보통의 보고서와 비슷하다. 사업별 실적, 정량 지표, 예산 집행 내역, 주요 성과 사례 등을 모은다. 다만 백서에서는 여기에 더해 '맥락'을 설명할 자료가 필요하다. 산업 트렌드, 시장 데이터, 관련 정책 동향, 경쟁사 벤치마킹 등 우리의 성과를 더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외부 정보도 함께 수집한다.
집필 단계에서는 전문 에디터나 작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내부 담당자가 쓰면 업무 용어와 조직 내부 맥락에 갇히기 쉽다. "선제적으로 추진하여 가시적 성과를 도출했다"는 식의 관공서 문체가 아니라, "3개월 만에 고객 불만을 50% 줄였다"처럼 구체적이고 명료한 문장으로 써야 한다.
디자인은 백서의 생명이다. 일반 보고서처럼 표와 그래프만 잔뜩 넣으면 안 된다. 인포그래픽, 타임라인, 다이어그램 등 시각적 요소를 적극 활용해 복잡한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단순히 예쁜 게 아니라, 정보 전달력을 높이는 디자인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검토와 수정이다. 내부 검토는 물론이고, 가능하다면 타겟 독자 몇 명에게 초고를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는 게 좋다. "이 부분이 이해가 안 간다" "이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 같은 실질적인 의견을 반영하면 훨씬 완성도 높은 백서가 나온다.

비용은 얼마나 들까
백서 형식 성과보고서 제작 비용은 규모와 복잡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대략적인 범위를 알아보자.
소규모 백서 500만 원 선이다. 기존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고, 단순히 재구성과 편집 디자인만 필요한 경우다. 프리랜서 에디터와 디자이너를 각각 고용하면 이 정도 예산으로 가능하다.
중규모 백서 1,500만 원 정도다. 원고 기획과 집필부터 시작해서, 전문 디자이너가 일러스트와 인포그래픽을 제작하는 수준이다. 대부분의 기업이나 기관에서 연간 성과보고서를 백서로 만들 때 이 범위에 속한다.
대규모 백서(80페이지 이상, 프리미엄 디자인, 영문 번역 포함)는 2,000만 원 이상 든다. 글로벌 기업의 연차보고서나 정부 부처의 주요 정책백서 수준이다. 컨설팅 업체나 대형 출판사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인쇄 비용이 별도로 든다. 100부 기준으로 일반 인쇄는 100만-500만 원 정도다. 요즘은 인쇄본을 최소화하고 PDF 버전을 주로 배포하는 추세라, 인쇄 비용을 아끼는 경우도 많다.
숨은 비용도 있다. 사진 촬영이 필요하다면 50만, 30만 원, 영문 번역은 페이지당 5만~10만 원 정도다. 처음부터 예산에 여유를 두는 게 좋다.
내부 제작 vs 외주, 뭐가 나을까
비용을 아끼려고 내부에서 직접 만들까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 결론부터 말하면, 내부 제작은 시간과 전문성 측면에서 쉽지 않다.
내부 담당자는 업무 용어에 익숙하지만, 그게 오히려 독이 된다. 외부인이 읽었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르는 문장을 아무렇지 않게 쓴다. "이해관계자 중심의 통합적 접근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했다"는 식의 문장이 대표적이다.
디자인은 더 어렵다. 파워포인트나 한글 문서로 대충 만들면, 전문성이 떨어져 보인다. 백서의 목적이 '조직의 신뢰도와 전문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정작 문서 자체가 비전문적으로 보이면 역효과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간이다. 본업이 따로 있는 담당자가 몇 달씩 붙잡고 있으면, 오히려 기회비용이 더 크다. 차라리 전문가에게 맡기고 그 시간에 본업에 집중하는 게 조직 전체로는 이득이다.
다만 내부 제작이 적합한 경우도 있다. 조직 내에 에디터나 디자이너 인력이 있거나, 연간 여러 건의 백서를 제작해야 해서 노하우가 쌓여 있는 경우다. 이럴 때는 템플릿을 만들어두고 내부에서 효율적으로 돌리는 게 맞다.
외주 맡길 때 체크리스트
전문 업체에 맡기기로 했다면, 몇 가지 확인할 사항이 있다.
포트폴리오를 꼼꼼히 봐야 한다. 실제로 우리 업종이나 비슷한 규모의 백서를 만든 경험이 있는지 확인하자. 스타트업 백서와 공공기관 백서는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견적에 뭐가 포함되어 있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기획, 원고 작성, 편집, 디자인, 인쇄까지 모두 포함인지, 아니면 디자인만 해주는 건지 확인하자.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는 경우"도 미리 물어봐야 한다.
수정 횟수를 계약서에 명시하자. 보통 2~3회 정도 수정을 포함하는데, 그 이상 수정하면 추가 비용이 든다. 내부 검토가 길어지면 수정 횟수가 급격히 늘어나니, 처음부터 방향을 명확히 잡는 게 중요하다.
일정을 현실적으로 잡자. 기획부터 인쇄까지 최소 2~3개월은 잡아야 한다. "다음 달 행사까지 급하게 만들어주세요" 하면, 퀄리티가 떨어지거나 추가 비용(특급 작업비)이 발생한다.
효과적인 백서 기획을 위한 팁
실제로 백서를 기획할 때 도움이 되는 몇 가지 팁을 공유한다.
하나의 백서에 모든 걸 담으려 하지 말자. 전략백서, 기술백서, 성과백서처럼 용도별로 나눠 만드는 게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투자자용 백서와 고객용 백서는 강조점이 달라야 한다.
데이터는 많되, 보여주는 건 적게 하자. 뒷받침 자료는 충분히 준비하되, 실제 백서에는 핵심 수치만 선별해서 넣는다. 나머지는 부록이나 별도 자료집으로 빼는 게 가독성을 높인다.
성공 사례만 나열하지 말자. "우리가 시도했다가 실패한 것, 그로부터 배운 점"도 솔직하게 담으면 오히려 신뢰도가 높아진다. 완벽한 척하는 백서보다, 진정성 있는 백서가 더 강력하다.
디지털 버전을 염두에 두고 만들자. PDF로만 배포할 거라면 페이지 개념보다 스크롤 친화적인 레이아웃이 더 나을 수 있다. QR코드로 영상이나 웹사이트를 연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결국 중요한 건 '누구를 위한 문서냐'는 것
성과보고서를 백서로 만드는 일은 단순히 형식을 바꾸는 게 아니다. "우리 일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다.
내부 결재용 문서는 실적 나열로 충분하다. 하지만 외부에 우리 조직의 가치를 알리고, 신뢰를 쌓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다면 접근 방식을 바꿔야 한다. 백서는 그 시작점이다.
물론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 하지만 잘 만든 백서 하나가 광고, 홍보, 세일즈, 채용 등 여러 목적으로 활용되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투자 가치가 있다. 중요한 건 "올해도 보고서 만들었으니 끝"이 아니라, "이 문서로 우리가 무엇을 얻을 것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백서 형식의 성과보고서는 트렌드가 아니라, 이제는 기본이 되어가고 있다. 당신의 조직도 올해 성과를 단순히 '보고'하지 말고, 전략적으로 '알려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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